초록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하고 있는 지속적인
집단학살 공세는 실증주의적 국가 주권 개념에 내재한 폭력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러한 서술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이 초래한
참혹한 피해를 조명하는 동시에, ‘자기방어’와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공세를 정당화하고 지속시키는 세계적
공조를 비판한다. 팔레스타인 지식인 및 활동가들이 이러한 주장에
효과적으로 맞서 온 가운데, 본 글은 국가성과 주권이라는 더
광범위한 개념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필자는 이를 위해 식민지 이전 하와이의 통치 관행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제시한다. 피난처 제도인 푸우호누아(Pu’uhonua; 피난처)의
실천을 살펴봄으로써 주권을 재상상할 수 있는 대안적 틀을
제시하고, 국가성과 전통적으로 결부되어 온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관행에 도전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이 같은 질문을
탐구함으로써 공동체적 자유와 해방을 향한 현재진행형 투쟁의
맥락에서 주권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다.
라파는 불타고, 나는 잠든 아들을 안고 있다
나는 사진을 바라본다
아이들의
뼈에서 찢겨나간 미소
텅 비어버린 웃음
나는 불타는 텐트를, 바람에 흩날리는 살점을 담은 영상을 본다
잠든 아들을 가슴에 안고나는 분노 같은 것을 느낀다
사랑 같은
두려움 같은
그리고 수치심
그리고 격분하지만 이 감정은 그 모두이면서 여전히 다른 무언가다
내 감정의 어휘를 훨씬 넘어선 무언가
나는 언어를 잃은 시인이다
뿌리를 잃은 공감자
나는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 넘친다
공포 같은 것
그러나 여전히 꼭 그것은 아닌나는 잠든 아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결코 만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한 남자가
영아의 시신을 들어 올린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우리 인류의 마지막 조각과 함께 실려 가 버렸다
자신을 다잡기도 전에, 나는 통곡하고
내 팔 안에 잠자던 아기가 깜짝 놀라 깨어난다
그리고 이제 나와 함께 운다팔레스타인을 위해
& 뿌리 뽑힌 올리브나무를 위해
포격당한 병원 & 학교 & 집을 위해
수천 명의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부모와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순교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치 꽃처럼
절단된 사지를 주워 모으는 아버지들을 위해
마치 공포의 돌풍에 휘말린 모래처럼
흩날리는 재를 받아내는 어머니들을 위해
나의 아들과 나는 여기에 있다
온 세상 저편의 점령 아래
라파의 불꽃이 우리 앞에 타오른다
나는 피 속에서 타닥거리는 열기를 느낀다
그리하여 내 아들과 나, 우리는
이 말없는 세상을 우리의 곡성으로 채운다
나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나는 한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고 남은 한 팔로는 생후 석 달 된 아들을 안은 채 이 서문을 쓴다.1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향해 새로운 집단학살 공세를 시작한 2023년 10월에 내 파트너는 임신 3개월 차였다. 파트너가 이 찬란한 아이를 품고 낳기까지, 이스라엘과 점령군은 약 186,000명을 살해했으며,2 살해된 한 명 한 명도 누군가의 찬란한 아이였다. 치솟는 사망자 수 외에도, 이스라엘의 폭격은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적절한 의료 처치나 물자 없이 전쟁터에서 아이를 낳도록 했으며,3 아이들은 학교와 음식 없이 지내야 했고, 가자지구 내 모든 병원과 학교 건물은 불능 상태가 되거나 완전히 파괴되었다.4 이 수치만 보더라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상대로 전면적인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스라엘과 동맹국들은 줄곧 이 같은 잔악 행위를 이스라엘의 주권적 권한의 하나로 정당화해 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의 작가, 언론인, 이론가, 법학자, 예술가들은 수많은 저작을 통해 이러한 법적·정치적 주장을 효과적으로 허물어 왔다.5 팔레스타인 자유 투사들은 이 집단학살이 1948년 시작된 나크바(Nakba)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점을 힘 있게 입증해 왔다.6 그 작업이 이미 분명하고 엄밀하게 이루어진 만큼, 나는 다른 질문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이 자기를 방어할 권리를 가지는지를 따지기보다는, 국가성과 주권의 의미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 나아가, 국가 보존에 대한 단순하고도 폭력적인 충성을 넘어 주권의 의미와 관행을 변혁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전 지구적 해방 프로젝트에 어떤 의미를 지닐지 상상해 보고 싶다. 나는 초기 하와이 왕국과 그 주권의 핵심 요소였던 피난처 관행을 분석함으로써 앞선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며, 이 모오렐로(mo'olelo; 역사, 이야기, 계보, 문학)가 해방적·탈식민적 미래를 향한 우리의 현 투쟁에 유의미한 자양분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 위 질문에 접근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우리나라의 침탈자인 미국 정부의 전적인 지원 아래 자행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그러나 무한히 실망스럽고 충격적인 것은 태평양 연안의 주권 국가들로부터도 이스라엘을 향한 지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들 국가 중 일부가 세계의 집단학살 식민 지배자들과 함께 투표하는 것을 목격했다.7 나는 깊은 성찰과 함께 자문했다. 내 고향, 내가 사랑하는 나라의 주권이 인정된다면 우리 역시 식민 지배자들과 함께 투표하게 될 것인가?
가볍게 꺼내는 질문이 아니다. 하와이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이 대체로 집단학살을 옹호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주권과 인정이란 마치 유혹적인 괴물과 같아서, 그것을 가진 이들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지키도록 부추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세계적 제국주의 세력 및 그들의 폭력적인 행보를 가까이함으로써 안락을 구하거나 그에 편승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른바 ‘국가들의 가족’의 일원이었던 과거를 여전히 자랑스러워하며 국제사법재판소(ICJ)나 상설중재재판소 같은 국제 사법 기구를 통한 탈점령 과정에 기대를 품고 있는 수많은 카나카 마올리(Kānaka Maoli)의 모습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팔레스타인에 더해 서파푸아 등지에서까지 집단학살이 심화하는 순간에도 우리 민족이 이 같은 제국주의 주권의 버팀목들에 충성을 거두지 않는 데 당혹감을 느낀다. 당장의 집단학살도 막지 못하는 국제사법재판소가 하와이 왕국을 복원해 줄 것이라고 적지 않은 수의 카나카 마올리가 여전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8 국가주의적 주권에 대한 이러한 충성심과, 현존하는 권력 구조가 하와이를 ‘회복’하고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가 인식하는 하와이의 예외주의와 이 제국주의적 통치 기준에 대한 신뢰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하와이를 통치할 가장 적격한 존재가 하와이인임을 온 마음으로 믿지만, 생중계되는 학살 속에서 주권과 통치에 대한 이 격렬한 모순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나로 하여금 하와이 ‘주권’이라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나 자신의 충성심과 전 지구적 해방 투쟁에서 주권의 역할 혹은 그 부재를 재고하게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우리 자신의 주권, 민주주의, 해방 투쟁을 팔레스타인 민중을 성공적으로 돕는 데 활용하지 못한 우리의 공동체적 무력함에서 출발한다.
카나카 마올리 학자인 나는 미래는 과거에 있다(i ka wā ma mua, i ka wā ma hope)는 가르침을 받았으므로9 현재와 미래의 투쟁에 대한 비판적인 해답과 영감을 찾고자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나를 초기 하와이 왕국과 그 통치의 핵심 요소로서 푸우호누아(피난처와 성역)가 도입된 방식을 간략하게 연구하도록 이끌었다. 마쿠아(Mākua; 부모)로서, 나는 이 모오렐로가 우리의 가정, 우리의 운동,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향한 열망 속에서 주권과 통치에 대한 새롭고 변혁된 실천에 영감을 불어넣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나는 하와이가 사랑해 마지않는 모이(Mō'ī)이자 하와이 최초의 ‘주권자’인 카메하메하 파이에아(Kamehameha Pai'ea)로 이야기의 문을 열며, 이 글을 여러분 모두에게 겸허히 바친다.
하와이 최초의 주권자: 카메하메하
카메하메하 파이에아는 18세기 중반 이 카 와 오이위 와레(i ka wā 'ōiwi wale, 원주민의 시대)10에 태어났으며, 그의 집권과 통치는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유럽계 이방인들의 유입과 정착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이로써 카메하메하는 하와이 사회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리던 시기와 외부에서 유입된 질병으로 하와이인의 삶이 처참히 무너지던 시기를 가로지르게 되었다.11 오늘날 대부분의 카나카는 카메하메하 파이에아를 근대 하와이 왕국의 시조로 추앙한다.12 카메하메하가 하와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사이자 지략가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1893년 미군을 등에 업은 하올레(haole) 사업가들이 불법으로 전복하기 전까지, 그가 다진 토대 위에 세워진 그의 왕국은 약 1세기간 별다른 저항 없이 유지되었다.
카메하메하는 통치 동안 신실하고 경건한 모이로 인정받았다. 19세기 하와이 학자 사무엘 카마카우에 따르면,13 카메하메하가 전쟁의 신 쿠카일리모쿠(Kūkā'ilimoku)를 공경하는 데 보인 헌신이 하와이 제도를 정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4 정복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모이는 자신의 신 쿠카일리모쿠에게 봉헌되었던 모든 땅을 피로 물들지 않을 피난처, 즉 푸우호누아로 재헌정했다. 카마카우는 이 푸우호누아를 통치 권력에 반하는 모든 과오가 용서받고, 행위자들에게 죽음 대신 피난처가 제공되는 장소로 묘사한다.15
푸우호누아의 확장 외에도, 카메하메하는 카나와이 마말라호에(Kānāwai Māmalahoe; 쪼개진 노의 법)을 제정한 사실로 널리 알려져 있다.16 푸나에서의 정복전 중, 지역 어부 몇 명을 뒤쫓던 카메하메하 파이에아의 발이 파호에호에(pāhoehoe; 용암석)에 걸리고 말았다. 카메하메하가 옴짝달싹 못 하는 동안 어부 한 명이 노를 집어 장차 모이가 될 이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고, 그 충격에 노가 산산조각 났다. 이처럼 모이를 모독하고 위반하는 행위는 어부를 사형에 처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부가 눈앞에 끌려왔을 때, 카메하메하는 카나와이 마말라호에를 공포했다.
E nā Kānaka,
E mālama 'oukou i ke akua
A e mālama
ho'i ke kanaka nui a me kanaka iki; E hele ka
'elemakule, ka luahine, a me ke kama A moe i ke ala
'A'ohe mea nāna e ho'opilikia.
Hewa nō, make.
이 카나와이에서, 알리이(ali'i)는 백성들에게 먼저 아쿠아(akua) 쿠카일리모쿠를 섬길 것을, 그리고 그 섬김에서 나아가 귀한 이부터 평범한 이까지, 노인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두루 돌볼 것을 촉구한다. 마지막 행에서 그는 모든 카나카가 아무런 방해 없이 길가에 누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라고 명한다.
카메하메하가 푸우호누아를 헌정하는 데 전념하며 카나와이 마말라호에를 제정함으로써 죽음의 시대가 끝나고 그의 통치는 생명과 번영을 위한 것이 될 터였다고 카마카우는 쓴다.17 이 분석은 하와이 왕국 가장 초기 단계에서 시행된 핵심 원칙 중 일부를 조명하지만, 카마카우의 주장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비판의 여지가 없지 않다.
첫째, 초기 하와이 왕국의 사형 집행 관행이 변했다 하여도, 30년 앞서 하와이에 유입되어 확산된 외래 질병들 때문에 카메하메하의 통치 기간은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려 있었다. 카메하메하의 시대를 ‘생명’의 시대로 규정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석연치 않은 지점은, 카메하메하가 어떤 의미로도 평화주의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모이가 되어 코 하와이 파에 아이나(Hawai'i Pae 'Āina)를 자신의 권좌 아래 통합하기 위한 원정 내내, 그와 그의 코아(koa)는 수천 명에 달하는 오이위 마올리('Ōiwi Maoli) 동포를 살해했을 것이다.18
그러므로 아마도 카메하메하의 통치는 현실보다는 이상에 기반한 생명의 통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하메하를 둘러싼 결코 멈추지 않고 막을 수 없는 죽음과 고통, 그리고 자기 손으로 앗아간 생명들에 대한 회한이 이 젊은 통치자로 하여금 정통성과 권력이 오로지 적을 물리치고 죄인을 죽이는 능력에만 달린 왕국에 심각한 한계를 느끼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카메하메하와 그의 통치는 한때 자신의 백성이 누렸던 번영과 와이와이(waiwai), 안녕을 되찾아야 한다는 극복할 수 없는 과제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이 생명을 위한 행보 가운데, 당연하게도 카메하메하 주변에는 전쟁에 기대지 않고 통치 권력을 공고히 한 알리이들의 사례가 얼마든지 있었다. 오아후나 카우아이의 유력한 족장 가문들만 살펴봐도 그 일례를 확인할 수 있었을 터이다.19 이 위대한 모이이자 코아가 피난처와 성역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궁극적인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생각건대, 푸우호누아를 제도화하고 확장하는 데 그가 맡은 역할이 그의 통치 중 가장 위대한 성취이자 오이위('Ōiwi; 토착민, 뼈의 자손들) 통치의 가장 지속적인 가르침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푸우호누아, 권력, 포노 통치
지난 몇 년간 나는 푸우호누아의 역사, 그리고 현대 하와이 운동 속에서 푸우호누아 개념이 보여 준 급진적인 부흥에 깊이 몰두해 왔다.20 내가 읽은 수백 편의 19-20세기 기록 자료들은 하나같이 푸우호누아를 피난처, 돌봄, 성역으로 묘사한다. 푸우호누아는 초기 하와이 왕국 통치 관행의 핵심에 자리하면서 구금 정치를 깊이 고찰하고 오늘날의 주권적 세계 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권력과 정통성의 언어를 구사했다.21
세계의 많은 독립 국가들, 특히 정착민 통치하에 통합되고 점령된
국가들에서, 국가는 지배 질서에 의해 타자화된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감금하고, 그들의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안보를 유지하는
능력에서 그 안정성과 정통성의 근간을 끌어낸다.22 국가는
시민권 내에서 누가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지’ 결정하고 이를 강제함으로써,
그리고 나머지를 공공의 안전과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로 규정함으로써,
권력을 확보하고 수호한다.23
반면, 역사적으로
알리이가 포노(pono; 균형 있고 의로운)한 방식으로 통치하는 능력은
알리이의 정통성과 마나(mana; 권력, 권위, 정통성)를 지켜 주는
힘이 되었다. 외래인 이전의 시대에도 폭력과 전쟁은 분명
존재했지만 폭력 자체가 권력이나 통치를 정당화하지 못했으며 단지
일시적으로 자리를 공고히 할 뿐이었다. 도리어, 군사적 승리를
거머쥔 알리이에게는 통치라는 일이 남아 있었다. 따라서 모이의
정통성은 카나카를 위해 돌봄을 베풀고, 말라마 아이나(mālama
'āina)를 실천하며, 평화와 번영을 이룩해내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었다.24
오늘 나는 극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국내적 관행으로 사용되었던, 주권과 피난처에 관한 오이위의 원칙 및 가치를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외부를 향해 확장할 수 있음을 말하려 한다. 하와이와 모아나누이아케아(Moananuiākea)의 우리 민족들은 오랫동안 서로에게서, 그리고 바다 너머에서 배워 왔다. 우리는 친족과 낯선 이들의 지식을 흡수해 왔고, 그를 우리 세계와 정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적절하든 아니든)선택적으로 차용해 왔다.25
하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 그치지 말고 세상을 향해 외부로 손 내밀기를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쿨레아나(kuleana; 책임과 특권)는 기후 재앙, 추출적 자본주의, 비군사화를 해결하기 위해 선두에 서는 것뿐만 아니라, 오직 ‘자기를 방어할 권리’만을 유일한 신념으로 삼는 협소하고 인위적인 주권 개념에 맞서 운동을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와이와 우리의 위대한 모아나누이아케아는 이제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때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치고, 변화시키며, 무엇보다도 가장 절실히 피난처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피난처를 만들고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푸우호누아의 이야기는 우리가 일구고자 하는 세계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천 가지 오이위 통치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오이위의 역사, 담론, 그리고 이 섬들의 바다에서 이어져 온 관행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우리는 주권의 본질 자체를 바꾸어 나갈 수 있으며, 나아가 이 관행을 모아나(moana) 너머 친족들에게도 용기 있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칙의 실천으로 우리는 팔레스타인, 서파푸아, 수단, 콩고 등지에서 자행되는 학살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러한 폭력을 부추기고 정당화해 온 세계 질서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주권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더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주권을 버리고 전혀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대다수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우리 하와이 사람들에게 주권이란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오늘 내가 주권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서구식 주권 형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들, 우리의 아이나(āina), 그리고 인간을 넘어선 우리 친족의 생명을 보호하고 창출하는 자기결정의 형태를 상상하고 언어화하는 데 전념하는 토착민 연구의 특정 흐름을 따른다. 이처럼 논의되는 주권은 조앤 바커, 리앤 베타사모사케 심슨, 글렌 숀 콜트하드와 같은 토착민 학자들의 것과 궤를 같이하며, 이들은 각각 서구적 형태의 주권과 토착민의 인정 욕구를 문제화해 왔다.
바커는 “주권은 식민주의의 역겨운 악취를 풍긴다.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며 문제투성이다. 하지만 토착민들은 자결권과 자치라는 연결된 개념들 속에서 주권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재정의해 오기도 했다”고 주장한다.26 마찬가지로 심슨은 토착민 사상의 다양성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주권의 다양한 표현을 상기시킨다. 심슨은 “주권은 단순히 땅에 관한 것이 아니다. 주권은 7세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7세대 후로 이어지는 영적, 정서적, 지적 공간이기도 하다. 장소라는 단어는 동물 민족과 식물 민족, 물, 공기, 흙을 포용한다”고 쓴다.27
서구식 주권 형태에 도전하는 이 같은 주요 사례들은 많은 토착민 이론가와 운동가들로 하여금, 콜트하드 왈 “식민 국가와 사회로부터 ‘돌아서’ 자신들의 탈식민 실천 속에서 해방의 원천을 찾도록” 이끌었다. 주권과 인정에 대한 이 독특한 접근 방식은 그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게 했다. “탈주체화의 비판적 자기긍정 및 자기변혁적 윤리로부터 길러지는 힘은 국가주의적 인정 정치가 내포한 동화의 덫에서 신중하게 벗어나, 대신 우리 자신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28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 가운데에서도 주권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우리 민족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지녀 왔다. 1970년대 초 하와이에서 주권은 강제 퇴거, 군사화, 정치적 권리 박탈에 맞서는 운동의 결집 구호였다.29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주권이라는 언어는 태평양 전역에서 핵무장화에 맞서는 투쟁의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이는 태평양 독립 및 비핵화 운동(Independent and Nuclear Free Pacific Movement)을 낳았다.30 1990년대에 이르러 주권은 자결권을 위한 지속적인 투쟁 속에서 하와이 민족주의에 헌신하던 하와이학 연구자들에게 핵심 쟁점이 되었다.31 지난 20년간, 일부는 하와이가 과거 주권 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들어 하와이의 점령 해제를 주장하며 명백히 서구적인 형태의 주권을 우선시해 왔다.32
국제적 인정과 탈점령을 경유하는 이러한 주권 접근 방식은 우리 민족이 계속해서 겪고 있는 식민주의의 실제적이고 긴박한 폭력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하와이 주권이라는 실증주의적 관념에 기반한 일종의 예외주의를 양산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러한 사상이 이데올로기로 전이되어, 탈점령의 법적 필요성을 우선하는 한편 우리 모아나 안팎의 ‘인정받지 못한’ 다른 토착민 및 ‘국가 없는’ 민족에게는 해방의 약속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근래 들어 신세대 하와이 학자들은 반제국주의 및 반식민주의 투쟁을 더 적절하게 표현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의 산물 중 하나는 숨결, 일어남, 주권을 의미하는 용어 ‘에아(Ea)’의 부활이었다. 그 이래 학자, 활동가, 지역 사회 조직자들은 ‘에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으며, 고정된 정치적 지위가 아니라 아이나의 생명 및 우리 민족들과 맺는 관계를 최우선시하는 일련의 역동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주권과 구별됨을 강조한다.33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1843년 카우이케아울리 카메하메하 3세의 중대 선언, ‘우아 마우 케 에아 오 카 아이나 이 카 포노(Ua mau ke ea o ka ‘āina i ka pono)’이다. (정부나 기관, 군대가 아닌) 땅의 주권은 균형과 의로움을 통해 지속된다.
단순히 오이위에 해당하는 영어 용어를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식민주의가 초래한 심각한 우려를 해결할 수 없겠지만, 고정된 주권 관념에 도전하는 이 같은 사례들은 우리 민족들이 주권의 문제와 역설을 헤쳐나가는 여러 방식을 보여 준다.34 우리 민족들은 우리가 주권 개념을 통치 관념 속에 어떻게 내면화해 왔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맞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주 간단히 말해, 팔레스타인과 서파푸아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을 지켜보며, 우리는 이러한 폭력을 주권의 예외나 일탈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설계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서 직시해야 한다.
적어도 지난 세기 동안 주권적 폭력의 본질과 행사 방식은 전방위적으로 팽창하는 유럽 및 미국의 군사 프로젝트에 집중됐다. 8,000억 달러에 달하는 군사 예산을 보유한 미국이 이 행보의 선두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정부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태평양 없이는 이 지속적인 군사적 확장을 달성할 수 없었을 것임을 안다. 모아나누이아케아(Moananuiākea; 끝없이 펼쳐진 광대한 바다와 그곳의 민족들, 오세아니아)가 미국(및 유럽) 군사력의 최우선 전략 훈련장으로 전유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바로 이곳, 우리의 웅장한 모아나누이아케아에서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자원을 채굴하고, 무기를 시험하며, 죽음을 위한 훈련을 벌이고 있다. 태평양에 위치한 이 거점은 적어도 19세기 이래로 미국의 군사적 폭력 및 우리가 팔레스타인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과 같이 미국을 등에 업은 군사 개입의 모든 측면이 우리 섬들의 바다가 제국주의적 군사 점령의 바다로 전락함으로써 완전히 용이해지고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아마도 2024년 6월 하와이로 돌아온 림팩(RIMPAC; 환태평양훈련)일 것이다. 림팩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해군 합동 군사 훈련이다. 림팩 기간 전 세계 군대가 우리 고향과 바다로 몰려와 훈련을 벌이며 환경을 오염시킨다. 이러한 기술 및 전술의 교환은 미국뿐만 아니라 현재 오세아니아 심해 채굴 사업의 선두 주자인 캐나다, 현재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있는 일본, 현재 서파푸아 집단학살을 자행 중인 인도네시아, 현재 카나키에서 카나크족 반식민 저항을 잔혹하게 탄압하고 있는 프랑스,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집단학살을 자행 중인 이스라엘 및 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다른 정착민 점령 국가들에 의해 활용된다.35 이스라엘이라는 집단학살 국가의 경우 군사화된 진압 전술 훈련과 군용 급 무기 및 기술 기부를 통해 미국 경찰 당국에 ‘은혜’를 갚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이후 미주 전역의 흑인, 토착민, 유색인 시위대에게 사용된다.36 이 폭력 및 시스템은 그들이 악순환 속에서 마음껏 활개 치도록 방조한다. 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 민족들, 우리 섬들, 우리 대양들이 연루되어 온 폭력과 탄압 중 일각에 불과하다.
결론
2023년 10월 이래로 나는 이스라엘이 수많은 점령국(및 일부 주권국)의 전면적인 지지를 받으며 팔레스타인 민중과 땅을 유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우리의 대양과 땅이 이러한 집단학살적 만행을 준비하는 데 이용되는 것을 지켜보며 애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슬픔 속에서도 이 섬들과 대양이 한때 성역이자 피난처였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 초기 통치 제도의 이 근본적인 원칙들이 우리의 국가들, 그리고 침탈자들에 의해 송두리째 버려진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오이위 통치 원칙을 버리고 식민지 체제가 인정하는 주권을 받아들인 결과 우리의 대양과 그녀의 백성들은 황폐해졌다. 요컨대, 하와이에는 터무니없는 경제적 불안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하와이인들을 위한 피난처가 없다.37 우리 섬들을 피폐하게 하는 치명적인 산불, 가뭄, 폭우, 해수면 상승 등 총체적 기후 붕괴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모아나의 백성들에게도 피난처는 없다.38 자본주의와 집단학살적 점령으로 인해 둘로 갈라진 우리 파푸아 형제자매들에게도 피난처는 없다. 군사기지와 모병소로 뒤덮인 미국의 ‘비편입 영토’ 구아한(Guåhan; 괌)과 사모아를 위한 피난처도 없다.39 비키니, 아네웨타크, 키리티마티, 칼라마, 메랄링가, 에뮤, 모루로아, 팡 아타 우파에서 유독성 폐기물과 핵 낙진으로 고향을 잃은 이들에게도 여전히 피난처는 없다.40 인산염 채굴의 여파로 여전히 고통받는 바나바의 형제자매들에게 피난처는 없다.41 끝없는 개발과 모독으로부터 우리의 아이나를 지켜 줄 피난처는 없다. 깊고 아름다운 바다에서 끊임없이 자원을 채취하고 광물을 캐내는 일로부터 우리의 모아나를 지켜 줄 피난처 역시 없다.42 식민 지배자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인정된 주권도,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진정한 피난처를 제공하지 못했다.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위 해악들 각각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초래한 제국주의 기획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마치 제국에 대한 충성과 참여가 우리를 보호해 줄 양 우리 민족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탈적 본성에 계속해서 현혹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적 안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집단학살적 주권의 제단 위에 우리의 인간성과 도덕적 원칙을 바쳐버렸다. 이는 주권의 한계와 타락을 동시에 드러내며 모든 민족의 보호에 쓰이지 못하는 주권은 한낱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묻는다. 피난처도, 돌봄도, 진정한 안보도 없는 주권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43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혹은 우리의 서파푸아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을 막을 수 없다면, 아니, 막으려 하지 않는다면, 주권이 무슨 소용인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제국주의 국가 연맹의 폭정 아래 살아가는 모든 민족의 해방을 위해 온전히 활용되지 않는다면, 주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가는 국가의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 우리는 주권과 자결권에 대한 우리의 실천과 열망을 타인의 해방을 향해 전환해야 한다.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카메하메하 파이에아의 모범을 따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메하메하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정부, 즉 아우푸니(The Aupuni)를 아들 리호리호에게 맡겼지만, 자신의 백성들은 와히네(wahine; 아내)인 카아후마누에게 맡겼다.44 카메하메하는 자신의 주권적 권한을 행사하여 카아후마누를 푸우호누아로 신성화하고 그녀에게 생명과 피난처에 대한 쿨레아나를 부여했다. 내가 제안하는 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복하건대, 국가는 국가의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부양하는 백성들과 아이나는 우리에게 속한다. 백성은 우리의 쿨레아나다. 백성은 우리의 친족이고, 우리는 그들의 피난처다. 우리에게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주권이나 독립, 혹은 최고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우나니-케이 트라스크는 그녀의 정전 격 글, 『하와이 원주민의 딸』에서 “태평양의 생존에 세계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쓴다.45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지 해수면 상승, 자원의 과도한 추출, 세계 경제 속 우리의 재정적 불안정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다 고향 안팎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우리가 연루된 방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대화와 굳은 신념으로 이 자리에서 시작하자. 우리의 아이나, 바다, 그리고 풍요로운 자원을 탐내는 독수리들을 일시적으로 막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완전한 해방과 주권의 실천을 향해 꿈꾸고 발전해 나가자. 더 원대한 어떤 것에 헌신하며 공동체적 힘을 기르자. 우리의 가장 소중한 원칙들을 살려내고 구원함으로써 세계를 살려내고 구원하는, 그토록 단순하고 순수한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자.
왜냐하면 혁명은 지평선 너머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우리 각자의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대다. 권력을 쥔 자들은 세상이 변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들려 하지만, 세상은 매일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성격과 방향이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이 변화를 의미 있게 하자.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자. 에아가, 우리의 실천이, 다시 한번 생명을 의미하게 하자.
- 1 언어 사용에 관한 주석: 본 글에서는 확장된 번역 대신 엄밀한 의역 방식을 채택했으며 본문 내 특정 단어에 대한 주석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번역을 통해서는 재현될 수 없는, 문단이 펼쳐지는 과정 속에서만 발전하는 앎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핵심 용어를 단일한 주석으로 환원한다면 본 작업의 의미가 훼손될 것이다. 독자를 소외시키려는 의도가 아님에도 이러한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야기할 수 있다. 이 부재의 아픔은 엄밀한 의역이라는 방식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거부의 실천을 통해 의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Wehewehe.org은 여러 사전에 걸쳐 하와이어 용어의 뜻을 살펴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적합한 자료원이다.
- 2 “가자 내 사망자 집계: 어렵지만 필수적인 일(Counting the Dead in Gaza: Difficult but Essential),” The Lancet, 2024년 6월 1일 접속,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24)011693/fulltext.
- 3 “지옥 속에서 태어나다(Born into Hell),” UNICEF, 2024년 6월 1일 접속, https://www.unicef.org/press-releases/born-hell.
- 4 “이스라엘이 가자의 학교와 대학을 어떻게 파괴했는가(How Israel has Destroyed Gaza’s Schools and Universities),” Al Jazeera, 2024년 6월 1일 접속, https://www.aljazeera.com/news/2024/1/24/how-israel-has-destroyed-gazas-schools-and-universities.
- 5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저자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누라 에라캇, “완벽한 피해자를 요구하는 폭력(The Violence of Demanding Perfect Victims),” Jadaliyya, 2023년 10월 10일; 지하드 아부살림, 제니퍼 빙, 마이클 로체, 『가자의 빛: 불길 속에서 탄생한 글들(Light in Gaza: Writings Born of Fire)』(시카고: Haymarket Books, 2022년); 사이 잉글러트, 미할 샤츠, 로지 워렌 편, 『강부터 바다까지(From the River to the Sea)』(런던: Verso Books, 2023년); 스티븐 살라이타, 『인터/내셔널리즘: 아메리카 원주민과 팔레스타인의 탈식민화(Inter/Nationalism: Decolonizing Native America and Palestine)』(미니애폴리스: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6년); 모사브 아부 토하, 『내 귀 속에 숨겨진 것들: 가자에서 온 시들 (Things you May Find Hidden in My Ear: Poems from Gaza)』(샌프란시스코: City Lights Books, 2022년).
- 6 셰린 세이칼리, “재앙의 시대 속 나크바(Nakba in the Age of Catastrophe),” Jadaliyya, 2024년 4월 8일 접속, https://www.jadaliyya.com/Details/45037; 라베아 에그바리야, “법적 개념으로서의 나크바를 향하여(Toward Nakba as a Legal Concept),” Columbia Law Review 124, 제4호(2024년).
- 7 미크로네시아, 나우루, 파푸아뉴기니는 2023년 12월 유엔 총회의 휴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해당 투표에서 키리바시, 마샬 제도, 팔라우, 통가는 기권하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았다. 이전 투표에서 피지, 사모아, 투발루, 바누아투는 유사한 조치에 반대하거나 기권했다. (“UNGA,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에 휴전 요구(UNGA demands ceasefire in Israel’s war on Gaza),” Al Jazeera, 2023년 12월 13일).
- 8 2024년 7월 19일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 내 주둔은 불법’이며 이스라엘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팔레스타인 점령지 내 주둔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점령과 진행 중인 집단학살 공세가 아무런 제재 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팔레스타인 점령지(동예루살렘 포함) 내 이스라엘의 정책 및 관행에서 발생하는 법적 귀결(Legal Consequences arising from the Policies and Practices of Israel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including East Jerusalem),” 국제사법재판소, 2024년 8월 1일 접속, https://www.icj-cij.org/case/186).
- 9 릴리칼라 카메엘레이히와, 『원주민의 땅, 이방인의 욕망: 우리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Native Land and Foreign Desires: How Shall We Live in Harmony?)』(호놀룰루: Bishop Museum Press, 1992년), 22–23쪽.
- 10 테리 G. 카날루 영, 『하와이 원주민의 과거를 재고하다(Rethinking the Native Hawaiian Past)』, 『아메리카 원주민들(Native Americans)』(뉴욕: Garland, 1998년).
- 11 사무엘 마나이아칼라니 카마카우, 『하와이의 통치 족장들(Ruling Chiefs of Hawaii)』(하와이: Kamehameha Schools Press, 1961년).
- 12 레온 노에우 페랄토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Kokolo Mai Ka Mole Uaua O ‘Ī』에서, 카메하메하의 권력 장악은 수많은 다른 통치 족장들을 몰아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했으며, 그의 사후에 이르러서야 ‘우리 모두의 족장’으로 기려지게 되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레온 노에우 페랄토, 『Kokolo Mai Ka Mole Uaua O ‘Ī: 하와이 하마쿠아 하키나 지역에서 알로하 아이나의 회복력과 부활(The Resilience and Resurgence of Aloha 'Āina in Hāmākua Hikina, Hawai'i)』(University of Hawaii, 2018년), 82쪽.
- 13 사무엘 마나이아칼라니 카마카우는 1815년 태어나고 1833년 라하이나루나 학교에 입학하여 교사이자 역사가로 수학했다. 이후 하와이 왕국의 입법자가 되었다. 오늘날 그는 19세기 가장 저명한 다작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1865년부터 1871년까지 연재된 역사 칼럼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푸아케나 노겔마이어, 『Mai Pa‘a i Ka Leo: 하와이 원자료 속 역사적 목소리: 앞을 내다보고 뒤를 돌아보며(Historical Voice in Hawaiian Primary Materials: Looking Forward and Listening Back)』(호놀룰루: Bishop Museum Press, 2009년), 44쪽).
- 14 1868년 9월 19일자 “Ka Mo‘olelo o na Kamehameha”에서는 쿠카일리모쿠가 주요하게 다루어졌지만, 1867년 7월 6일자 연재분에서는 카메하메하가 모이로 즉위하는 데 도움을 준 수십 명의 다른 신들을 열거하고 있다. 이 추가적인 아쿠아(akua) 중 다수는 아쿠아 와히네(akua wahine: 여신)로, 카메하이카나, 하우메아, 펠레, 호오호쿠, 왈리누우, 칼라마이누우, 키하와이네, 히이아카 등이 포함된다. (카마카우, “Ka Moolelo o na Kamehameha: No ka noho alii ana o kauikeaouli maluna o ke aupuni, a ua kapaia o Kamehameha III,”(Ka Nupepa Kuokoa, 1868년 9월 19일).
- 15 “O ke akua o Kamehameha, o Kukailimoku, a o na aina o ua akua nei, he puuhonua ia; o ke kanaka make a holo a komo i ka aina o ke akua, ua ola ia kanaka, aole e hookahe ia ke koko. O na mea lawehala a pau o kela ano keia ano, ua pili i ka pilkia a me ka make, ua holo nae oia a komo i ka aina o ke akua, ua ola oia, ua pau kona pilikia." (카마카우, “Ka Moolelo o na Kamehameha: No ka noho alii ana o kauikeaouli maluna o ke aupuni, a ua kapaia o Kamehameha III,” (Ka Nupepa Kuokoa, 1868년 9월 19일).
- 16 “Pela ke kanawai Mamalahoa, he ola nui hoi ia no ka lahui i ka wa kaua,
- 17 카마카우, “Ka Moolelo o na Kamehameha,” (Ka Nupepa Kuokoa, 1868년 9월 19일).
- 18 페랄토, 『Kokolo Mai Ka Mole Uaua O ‘Ī』.
- 19 카메엘레이히와, 『원주민의 땅, 이방인의 욕망』, 25-33쪽.
- 20 현대의 푸우호누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19년 마우나케아 보호를 위해 푸우훌루훌루에 세워진 것이지만, 이것이 이 피난처 제도가 현대에 부활한 첫 사례는 아니다. 푸우훌루훌루 이전에도 마쿠아(1980년대), 와이마날로(1990년대), 와이아나에(2000년대)에 푸우호누아가 세워졌다. 이 피난처들은 후나나니호, 카후쿠, 카우아울라를 비롯한 다른 지역 사회가 푸우호누아를 세우도록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다. 2020년, 다양한 푸우호누아의 현대적 재헌정은 식민 지배국이자 점령국인 하와이 주 정부에 대한 포괄적 거부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통해 키아이(Kia'i)들은 진정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통치 관행을 수립하고 주권적 지리를 표명함으로써 주 정부의 권위에 성공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으며, 이에 궁지에 몰린 하와이 주 정부는 결국 무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자메이카 헤올리멜레이칼라니 오소리오, “부활한 푸우호누아에서 싹트는 폐지의 꿈(Abolition Dreams from a Resurgent Pu'uhonua),” 『American Quarterly』76권 제3호(2024년 9월 17일): 645-68쪽 참조.
- 21 오소리오, “부활한 푸우호누아에서 싹트는 폐지의 꿈(Abolition Dreams from a Resurgent Pu'uhonua).”
- 22 루스 윌슨 길모어, 브레나 반다르, 알베르토 토스카노, “자명한 것을 다시 진술하기(Restating the Obvious),” 『폐지 지리학: 해방을 향한 에세이(Abolition Geography: Essays Towards Liberation)』(뉴욕, Verso Books, 2022년).
- 23 조앤 바커, 『적색 공포: 국가가 지목한 토착민 테러리스트(Red Scare: The State’s Indigenous Terrorist)』(버클리: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21년).
- 24 카메엘레이히와, 『원주민의 땅, 이방인의 욕망』, 40-44쪽.
- 25 카마나마이칼라니 비머, 『No Mākou Ka Mana: 민족의 해방(Liberating the Nation)』(호놀룰루: Kamehameha Publishing, 2014년), 3-5쪽.
- 26 조앤 바커, 『주권의 문제: 자결권을 위한 토착민 투쟁 속 경합과 가능성의 현장(Sovereignty Matters: Locations of Contestation and Possibility in Indigenous Struggles for Self-Determination)』(링컨: University of Nebraska, 2006년), 26쪽.
- 27 리앤 베타사모사케 심슨, “우리 모두가 함께 살고 일하는 장소(The Place Where We All Live and Work Together),” 『Native Studies Keywords』(템피: University of Arizona Press, 2015년), 19쪽.
- 28 글렌 숀 콜트하드, 『붉은 피부, 하얀 가면: 식민주의적 ‘인정’ 정치의 거부(Red Skin, White Masks: Rejecting the Colonial Politics of Recognition)』(미니애폴리스: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4년), 48쪽.
- 29 하우나니-케이 트라스크, 『하와이 원주민의 딸: 하와이의 식민주의와 주권(From a Native Daughter: Colonialism and Sovereignty in Hawai'i』(1999년); 트라스크, 『Kū'ē: 하와이 토지 투쟁의 30년(Thirty Years of Land Struggles in Hawai'i)』; 트라스크, “현대 하와이 운동의 탄생(Birth of the Modern Hawaiian Movement)”; 오소리오, “하와이의 영혼들(Hawaiian Souls),” 『A Nation Rising』.
- 30 노엘라니 굿이어-카오푸아 외, 『Nā Wāhine Koa: 주권과 비군사화를 위한 하와이 여성 연대(Hawaiian Women for Sovereignty and Demilitarization)』(호놀룰루: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8년).
- 31 하우나니-케이 트라스크, “주권, 하와이의 맥락(Sovereignty, The Hawaiian Context),” 『하와이 원주민의 딸: 하와이의 식민주의와 주권』(호놀룰루: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년); 오소리오, “호오울루 라후이(Ho'oulu Lāhui),” 『Dismembering Lāhui』(호놀룰루: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년); 카메엘레이히와, “나의 민족에게 부치는 후기(An Afterword to My People),” 『원주민의 땅, 이방인의 욕망』; 테리 G. 카날루 영, “모아나 혈통의 후손 가문(A Descendant Family of the Moana Lineage),” 『하와이 원주민의 과거를 재고하다』.
- 32 데이비드 키아우 사이, “하와이 토착민성이라는 미끄러운 길(A Slippery Path Toward Hawaiian Indigeneity),” 『Journal of Law and Social Challenges』제10호(2008년 2월), 69-113쪽; 사이, “하와이 토착민성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며(Setting the Record Straight on Hawaiian Indigeneity),” 『Hawaiian Journal of Law and Politics』제3호(2021년).
- 33 노엘라니 굿이어-카오푸아, 이카이카 허시, 에린 카후나와이카알라 라이트, 『부상하는 국가: 생명, 땅, 주권을 위한 하와이 운동(A Nation Rising: Hawaiian Movements for Life, Land, and Sovereignty)』(더럼: Duke University Press, 2014년), 4쪽.
- 34 J. 케하울라니 카우아누이, 『하와이 주권의 역설들: 토지, 성, 국가 민족주의의 식민 정치(Paradoxes of Hawaiian Sovereignty: Land, Sex, and the Colonial Politics of State Nationalism)』(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 Duke University Press, 2018년).
- 35 “참가국(Participants),”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United States Commander of the Pacific Fleet). https://www.cpf.navy.mil/RIMPAC/Participants/
- 36 안젤라 Y. 데이비스, 『자유는 끊임없는 투쟁이다: 퍼거슨, 팔레스타인, 그리고 운동의 토대들(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 Ferguson, Palestine, and the Foundation of a Movement)』(시카고: Haymarket Books, 2016년).
- 37 “지상낙원에서 밀려나다(Priced Out of Paradise),” Hawai'i News Now, 2024년 8월 1일 접속, https://www.hawaiinewsnow.com/priced-out/
- 38 줄리안 아구온, “익사 따위는 집어치워라(To Hell with Drowning),” The Atlantic, 2021년 11월 1일.
- 39 키스 카마초, 『기념의 문화들(Cultures of Commemoration)』; 케네스 고피간 쿠퍼, “Kontra I Peligru, Na'Fansåfo' Ham: 구아한 내 군사적 (불)안정의 생산(The Production of Military (in)Security in Guåhan)”; 우페레사와 가리가-로페즈, “분쟁 중인 주권: 푸에르토리코와 아메리칸 사모아(Contested Sovereignties: Puerto Rico and American Samoa)”(2017년).
- 40 테레시아 테아이와, “비키니와 그 밖의 태평양 대양들(Bikinis and Other s/Pacific n/Oceans),” 『군사화된 흐름: 아시아와 태평양의 탈식민화를 향한 미래(Militarized Currents: Toward a Decolonized Future in Asia and the Pacific)』, 세게츠 시게마츠 및 키스 L. 카마초 편 (미니애폴리스: University of Minnesota, 2010년), 15-32쪽.
- 41 카테리나 마르티나 테아이와, 『바나바 사람들과 인산염 이야기: 오션 아일랜드를 소비하다(Consuming Ocean Island: Stories of People and Phosphate from Banaba)』초판(블루밍턴: Indiana University Press, 2014년).
- 42 “하와이 원주민 지도자들, 세계의 ‘차세대 골드 러시’에 맞서다(Native Hawaiian Leaders Take a Stand against the World’s ‘Next Gold Rush’),” Hawai'i News Now, 2023년 12월 14일, https://www.hawaiinewsnow.com/2023/12/15/some-hawaiian-leaders-say-no-deep-sea-mining/; “서태평양의 심해 채굴 이해관계 및 활동(Deep-sea Mining Interests and Activities in the Western Pacific),”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2024년 8월 1일 접속, https://oceanexplorernoaa.gov/okeanos/explorations/ex1606/background/mining/welcome.html.
- 43 진정한 안보를 위한 여성 연대(Women for Genuine Security), 2024년 8월 1일 접속, http://www.genuinesecurity.org/.
- 44 1819년 카메하메하의 임종시 공포된 “No Liholiho ke aupuni, a o Kaahumanu ke Kanaka(국가는 리호리호의 것이나, 백성은 카아후마누의 것이다),”라는 선언에서 비롯한다.『Ke Kumu Kanawai a me na Kanawai o ko Hawaii Pae Aina』(1841년, 12쪽).
- 45 트라스크, 『하와이 원주민의 딸』, 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