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은 낮아질 것이요E pi‘i ana o lalo
낮은 곳은 높아질 것이며E hui ana nā moku
섬들은 하나가 되고E kū ana ka paia
담장이 바로 설 것이라
국가는 국가의 일을,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국가체제는 통제, 배척, 스펙터클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국가체제와 겨루지 않는다. 우리는 그 부근에서, 부엌, 거리, 거실,
그리고 숲속에서존재한다.
우리의 목적은 대변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함께 모이는 것이다.
공동체를 세우고, 새로운
유대를 엮어나가기 위해.
통제 대신 돌봄
큐레이팅은권위를 발휘하는 일이 아니다. 슬픔을, 침묵을, 말해지지
못한 것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는 국가의
목소리를 자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상처에 귀 기울인다.
돌봄은 정확하고자, 주도하고자, 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릴 때
가능해진다.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되, 무엇보다도 친절과
감사의 마음으로 임하기를.
말하기 전에 듣기
가장 심오한 앎이 침묵 속에 눕는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에,
묘지를 울리는 매미의 웅성임에 깃든다.
우리는 짜여진 각본
없이, 동그랗게 둘러앉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노인, 아이,
이방인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온다.
말이 항상 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은 눈빛이, 몸짓이, 함께 들이마시는 숨이
된다.
말은 때로 유산이 된다. 듣기는 묻혀진 것을 기리는
일이다.
느림이라는 저항
속도는 권력의 언어이다.
우리는 의도를 가지고 느림을
실천한다.
이야기가 뿌리처럼 자라도록.
사물이 공동체
안에서 나이 들어가도록.
음식이 발효되고, 기억이 익어가고,
상처가 아물도록.
서둘러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어떤 진실은
시간이 지나야만 모습을 드러낸다.
아카이브라는 피난처
아카이브는 중립적이지 않다.
기억되는 이는 누구이고 잊혀지는
이는 누구인가?
그러나 아카이브는 생존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물 뿐 아니라 조각들을—찢긴 종이를, 아이의
그림을, 망가진 도구를 수집한다.
부재는 존재가 될 수 있는가?
기억이 곧 저항이다.
사로잡힌 국가성
국가라고 하는 이야기에는 완결이 없다. 국가성은 아물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상처이다.
과거에 살지만 현재로 손을 뻗는다.
우리는 그 망령을 되살리려, 반복하려 하지 않는다. 묻기 위해
소환할 뿐이다.
우리는 묻는다. 남겨진 이는 누구인가?
목소리를 빼앗긴 이는 누구인가? 무엇이 잊혀졌는가?
국가는
기념비가 아니라, 우리가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야 할 유령이다.
책임의 무게
큐레이터는 지식만이 아니라 부담과 특권, 돌봄을 짊어진다.
잠시 맡겨졌을 뿐, 이야기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책임은
의무가 아니다. 책임은 관계이다.
변화를 환영하기
과정은 유기체이다.
자란다. 움직인다. 부서진다. 흐른다.
우리의 작업은 이따금 전혀 낯선 무엇이 되기도 한다.
작업을
변화에 맡기는 일은 실패가 아니라 자유를 의미한다.
번역 안에서 길을 잃고, 그 틈새에서 다시 발견되며
우리는 서로 다른 땅, 다른 언어, 다른 아픔에서 왔다.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동일성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나눔으로써
뭉친다.
우리는 차이를 지우지 않는다. 우리는 차이를
끌어안는다.
우리는 ‘그리고’라는 말 속에 머문다.
각기
고유한 우리의 섬들은, 그럼에도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아닌
층층이 겹치는 의미들 속에서.
함께 쌓아올린 담장이 바로 설 것이라
담장은 장벽이 아니라 경계이다.
우리의 범위를 일러주는
표식이다.
흙으로, 나무로, 점토로 올린
명령 아닌 손이
빚어낸 보호막.
막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나누기에 서
있는 것.
우리는 숨쉰다. Ea.
이 길을 걷기.
연약함, 호기심, 슬픔, 애도, 희망 속에서 함께
있기.
서로를 지탱하고 보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