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대담은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의 작가 노혜리와 펠로우 크리스티앙 냠페타가 함께한다. 크리스티앙의 〈광주 레슨〉은 〈베어링〉에 포함되어 있다. 본 대담은 2026년 4월 줌으로 진행되었다.
노혜리: 자,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웃음) 저는 한국관 전시에서 〈베어링〉이라는 제목의 작업을 선보이는데요. 동사 ‘베어(to bear)’는 무게를 감내하거나 지탱한다는 의미,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 그리고 물론 아이를 품는다는 의미 등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죠. 처음 들어서면 보호막 같은 게 있는데요, 혹시 제 스튜디오 방문하셨을 때 오간자 천 기억하실까요?
크리스티앙: 네, 기억나요. 아름다웠죠.
노혜리: 그 천이 파빌리온 내부 공간을 L자 형태로 감싸는 역할을 하고, 그 안에는 제가 ‘스테이션’이라 부르는 여덟 개의 서로 다른 조각이 있어요. 이 스테이션들은 제가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은 모습, 혹은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아이에게 물려 주거나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죠. 각 스테이션은 동사를 제목으로 하는데요, ‘기억하는 스테이션’, ‘애도하는 스테이션’, ‘전망하는 스테이션’, ‘생활하는 스테이션’, ‘나누는 스테이션’, ‘기다리는 스테이션’ 같은 식이에요.
크리스티앙: 아름답네요.
노혜리: 여덟 개 스테이션 중 세 곳은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났던 일을 인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단순히 우리 바로 주변만이 아니라, 더 넓은 공동체와 실제 세계로 확장해서요. 우리가 이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니 좀 웃기기도 한데, 사실 1월에 떠난 베니스 현장 답사에서 〈광주 레슨〉을 포함한 ‘기억하는 스테이션’과 관련하여 일종의 전환점이 찾아왔어요. 물론 그전부터 몇 달간 〈광주 레슨〉에 대해 들어 왔고 또 생각해 왔었죠. 우리가 한국관에서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계속 그려보고 있었고요. 그러다 1월에 베니스에서 이미 도착해 있는 판들을 실물로 본 거죠. 최빛나 예술감독님이랑 같이 상자 몇 개를 열었는데, 보자마자 우리는 함께해야 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때까지 감독님이랑 저는 〈광주 레슨〉을 〈베어링〉과 나란히 배치해 별도의 작품으로 설치할까 고민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판을 실제로 보니까 바이닐 레코드 같기도 하면서 예상보다 큰 게 그 무게감, 그 존재감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기억하는 스테이션’의 조각과 〈광주 레슨〉이 하나의 몸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억하는 스테이션’에 대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는 그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스테이션 안에 크리스티앙의 작품을 담아내고 지탱하려(to bear) 하면서 비로소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어요.
크리스티앙: 작품을 만나게 된 과정과 작품을 통해 바이닐 앨범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감사히 잘 들었어요. 너무, 너무 아름답네요. 작가님이 어떻게 그런 ‘품기’라는 방식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가 돼요. 작품이 작가님의 손에 다루어지고, 보살핌을 받으며, 구상되거나 재구상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정말 감동적이고요.
2020년 〈광주 레슨〉의 안무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작업이 전시장 끝 지점에 설치되어 있어서 전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둘러본 후에야 그곳에서 판화를 찍을 수 있었죠.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일종의 순환 구조를 이룬 셈이에요. 의도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게, 기억의 신성함이라든가 존엄성을 보존하는 듯한 느낌이 일리가 있거든요. 그냥 휙 들어왔다가 판화만 찍고 나가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길을 따라가면서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야 판화 스테이션에 닿게 되는 거죠.
노혜리: 맞아요. 다른 설치 작업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저도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여정이나 통로를 만드는 걸 좋아해요. 특히 〈베어링>의 경우… 한국관에는 유리가 정말 넘치도록 많은데,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그 개방감이 자칫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사람들을 다른 시간대로 초대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오간자 천을 통과하면서 걷는 과정을 통해 이른바 ‘볼거리’에 도달하는 시간을 늦추고, 한국관의 기묘한 공간적 형태와 다양한 소재를 몸소 체험하게 하는 거죠. 네, 마치 다른 시간이나 다른 구조, 다른 장소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판타지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요.
‘기억하는 스테이션’은 2.4에서 2.7미터 정도 되는 높이에, 총 72장의 판이 바닥에 쌓여 있고 단 두 장만 진열돼요. 아까 바이닐 얘기를 했는데, 앨범을 틀 때 앨범 커버를 플레이어 옆에 놓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진열된 판들은 ‘베어러’라 불리는 퍼포머 내지는 수행자들에 의해 매일 교체되어 약간 비스듬하거나 기울어진 상태로 전시될 거예요. 관람객들이 조각 주위를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먼저 판 하나를 만나고, 그 다음에는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 포함될 펠로우 황예지 작가의 작업을 만나길 바라요. 그렇게 작품 주위를 거닐다 보면 판들을 만나게 되는 거죠.
크리스티앙: 아름다워요.
노혜리: 최빛나 감독님과 함께 구상한 게 있는데, 진열되는 두 개의 판 중 하나를 전시 내내 동일하게 유지하는 거예요. 아직 이미지는 고르기 전이지만, 경찰 폭력 장면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72개의 판 중에서 5·18 항쟁을 직접 다룬 것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나머지는 대부분 일상생활이나 꽃 같은 걸 담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변화하는 일상처럼 매일 바뀌는 판 하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배경 음악처럼 항시적인 암시나 배경으로서의 판 하나를 나란히 배치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크리스티앙: 네, 광주 프로젝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 역시 그것이 하나의 기념비였다는 거예요. 제 생각에 기념비에는 어떤 고요함이나 어쩌면 강렬함, 무엇보다도 추념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보듬는 전반적인 상황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시 말해, 희생자, 이 경우에는 학살 희생자분들이죠.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전시 환경에서 경험하게 되는 통상적인 속도를 늦추거나 변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아시다시피 복잡다단한 환경이잖아요.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가는 사람이 있으면 즐거움을 위해 가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로 했을 수도 있고요. 이렇게 수많은 목적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이 관객에게 공간을 통과하는 어떤 리듬이나 속도를 제안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여러 전략이 있을 수 있겠죠. 의자를 제공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 밖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성찰을 위해 시공간에 밀도를 더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것이 작업 속 안무의 쓰임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관객의 동선과 그 흐름을 세심하게 고민하는 일 말이죠.
노혜리: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의 몇몇 정원들을 참고하거나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면적은 아주 작고 아담할지라도, 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마치 완전히 새로운 풍경들을 연이어 마주하는 듯 느껴지게 설계된 곳들이 있거든요. 소쇄원이라는 조선시대 사설 정원을 2013년 처음 방문했어요. 최빛나 감독님에게 있어서도 주요한 장소인데요, 이곳을 방문한 이래로 설치 작업을 할 때면 항상 머릿속에 떠올라요. 창덕궁의 비원도 마찬가지고요. 설치 작업 속에서 관객의 안무를 구상할 때, 저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걸어가고, 마주치는 것. 비록 때로는 아주 미미한 요소일지라도요.
크리스티앙: 벽에서, 혹은 이 작업처럼 선반에서 작품을 꺼내서 무언가를 해보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도록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엄청난 초대예요. 제가 말하는 생동이 바로 그런 거죠. 정지된 이미지가 관객의 움직임에 맞춰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아가 관객이 작품을 옮기고, 다루고, 뒤집어 보기도 하는 거죠. 이어서 세 번째 생동이 뒤따르는데요, 바로 기억 그 자체가 되살아나는 거예요.
제가 자주 떠올리는 또 다른 형태의 생동이 있어요. 서구 전통에서도 수많은 예술품들, 특히 종교적인 도상이나 이미지를 담은 회화는 원래 행렬 중에 보여주려고 제작되었는데요, 다시 말해, 수레에 실리거나 누군가 손에 들고 거리를 지날 때처럼 이동하는 상태에서 감상하도록 설계된 작품이 많았다는 거죠. 밤에 촛불이나 횃불처럼 일렁이는 불빛 아래 놓임으로써 작품이 항상 생동하는 것이나 다름없게끔 한 경우도 있고요. 촛불이 됐든 횃불이 됐든 모닥불이 됐든, 빛 자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셈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미술관이나 갤러리 환경에서 접하는 고정된 조명과는 전혀 다르죠. 그러니까, 관람 행위 자체에 움직임이 내재되어 있었고, 그것이 곧 작품의 일부였어요. 작품을 가만히 오랜 시간 응시하는 방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걸지도 몰라요. (웃음) 아무튼 저는 그런 전통에 마음이 가요. 물론 여기서의 움직임은 정말 이미지 자체가 움직인다기보다는, 우리의 기억이 이미지를 움직이게 하거나, 광원이 바뀌거나, 혹은 액자를 든 사람 자체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만요.
노혜리: 그럼요.
크리스티앙: 〈광주 레슨〉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또 다른 과제는 추념의 대안적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었어요. 그냥 정적인 콘크리트나 청동상 말고, 친근하면서 상호작용과 사회적 관계를 중심에 두고, 순환에 참여하고, 사람들 손에 다루어지고, 그리고 어쩌면 감내하는(bearing) 기념비일 수 있도록요. 정말 아름다운 표현이네요.
흔히 기념비를 뒷받침하곤 하는 지자체나 시의회, 혹은 국가와 같은 거대 인프라의 손아귀로부터 기념비를 구출해내는 방법이기도 해요. 민중미술학교의 차원에서 기념비를 생각해보는 거죠. 건물도 교실도 없는 학교를 상상하면서 과연 그에 상응하는 기념비는 무엇일지 묻는 거예요. 대개 기념비라고 하면 육중한 재료나 산업적 공정 따위가 수반되잖아요. 그런 모델을 일상의 경제 차원으로 가져온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네, 바로 그 지점에서 움직임, 걷기, 행동, 상호작용, 안무 같은 요소가 전면에 부각되는 거죠.
노혜리: 이런 식으로 기념비를 생각하고, 기념비를 다르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 말을 들으니 ‘기억하는 스테이션’이 여덟 개의 스테이션 혹은 조각 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높이나 수직성 면에서요. 동시에 한편으로는 간신히 서 있는 상태이기도 해요. 12개에서 13개 정도 되는 막대기가 투명한 레진 구조를 받치고, 그게 그 위의 것을 받치고, 그 위의 것은 바로 아래 있는 것에 기대어 있죠. 재료 자체도 그렇고 개별적인 작은 소재들이 모여 겨우 서 있는 모습이 거의 조잡하기까지 해요. 그게 제가 기념비를 대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요. 제 말은, 분명히 수직적이고 확실히 서 있긴 하지만, 그게, 뭐랄까 남근적으로 읽히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웃음)
크리스티앙: 네, 아름다운걸요.
노혜리: 잠깐 제가 딴소리를 했네요. 다시 살아있는 기념비로 돌아가서,
사실 처음에는 ‘해방공간’이라는 주제 자체가 저한테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지난 몇 년간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소화하는 작업들을 해 왔거든요. 최빛나 감독님이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 저는 막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는데요. 몇 가지 작업들로 이루어진 연작을 마무리한 상태에서 ‘자, 이제는 뭘 생각하고 싶을까’ 고민하고 있었죠. 그리고 이 주제는, 뭐랄까 너무 거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제 작업 방식은 보통 제 삶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요. 대부분 저라는 개인이 직면한 시급한 질문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곤 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해방공간’이나 ‘살아있는 기념비’ 같은 개념과 제 작업 방식 사이에서 조금 힘들었어요.
하지만 한 일 년 전인가, 사실 아직 초기 단계였는데요, ‘베어링’이라는 단어랄까 개념을 접하고 정말 모든 게 하나로 모였어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죽음이나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삶에 대한 고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정말 생애 처음 남편과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약간 실없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들어가면서 얘기하는 식이었거든요. 가령 길에서 어떤 아이를 보고는 묻는 거죠. ‘우리 아이가 저러면 어떻게 할 거야?’ (웃음)
물론 아이를 특정한 방식으로 통제하거나 가르치거나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요. 아이는 그 자체로 독립된 인격체니까요. 하지만 파트너 아르만도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실 핵심은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어요.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 우리가 가지고 싶은 세계관이었던 거죠. 그게 제게는 하나의 접점이 되었어요. 아주 개인적인 층위에서 출발하면서도,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 마주하고 소화해내고 있는지, 그 과정에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한 거예요.
크리스티앙: 너무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예요. 여기저기 거닐면서 ‘저 아이가 우리 아이라면, 우리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자문하는 거요. 이건 결국, 음, 성찰이나 애도의 과정이 죽음을 생각하는 만큼이나 삶을 생각하게 했다는 작가님의 말씀과 맞닿아 있다고 봐요. 정말 강력한 깨달음이죠. 그리고 저도 동의해요. 우리가 지닌 가치를 고민하는 일은, 사실상,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죠. 아마 품기(bearing) 이후에 오는 단계일 텐데요, 제가 교육이나 양육, 즉 아이를 기르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사실 저라는 사람의 역할과는 그리 큰 상관이 없어요. 그보다는 이 존재, 혹은 한 인간에게 어떻게 자율성을 부여할 것인가에 가깝죠. 다시 말해, 내가 곁에 없어도 이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 저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저 자신을 지워나가는 중이에요. 그들에게 세계를 내어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교육과 양육 모두, 이제 와 깨닫는 거지만, 유산을 물려주는 일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전수한다는 것은 곧 해방시키는 것이고, 자유를 주는 것, 자율성을 부여하는 거예요. 이 세계를 기억하고, 돌보고, 지켜내며, 품을(to bear) 도구를 건네주는 거죠. 어쩌면 성장 환경 탓에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살해당하거나, 추방되거나, 투옥되는 등 온갖 기이한 일들로 어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곁에 없을 수도 있는 그런 세계에서 자랐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 것 같아요. 이게 꼭 보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것이 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어요. 저의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가치관이라는 게 일부는 웃기고, 일부는 끔찍하고, 또 일부는 좋기 마련이잖아요. 그보다는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주고 싶어요. 물론 바람일 뿐이죠. 정말 그렇게 될런지는 모르겠어요. 작가님 말씀처럼, 결국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으니까요. 아이들도 사람이잖아요. 그들만의 욕망과 의도, 방향, 야망을 지니고 있어요. 참 다행이죠.
아무튼, 네. 작가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들으면서 많이 배웠어요.
노혜리: 자율성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 그러니까 아이들을 그대로 놓아줌으로써 한 개인으로 해방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데, 저희 전시에 부제가 있잖아요. ‘요새와 둥지’요. 제 생각에 그게 바로 둥지가 해야 할 일, 둥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결국 둥지를 떠나야 하죠. 평생 둥지에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크리스티앙: 아, 그 말을 들으니 어릴 때의 일화 하나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차를 타고 등교하면서 매일 음악을 듣는 게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긴 해요. 그런 건 변하지 않는가 봐요. 여튼,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이랑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이 있었죠.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제가 원하는 음악을 트는 일이 잦아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른들이 성장하는 아이의 취향과 욕구를 위해 자리를 내어준 거죠. 어느 정도였냐 하면, 말 안 듣는 저를 훈육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래, 그럼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음악 틀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거였어요. 그럼 전 갑자기 의젓해지고요. 알죠? (웃음) 그렇게 공간을 협상해나가는 과정, 즉 내 공간을 점점 물리고 물려서 마침내 타인의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이것이 공동체 차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정치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뭐랄까, 급진적 환대 같은 걸까요? 아무튼 네, 갑자기 이 기억이 떠올랐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의 일화 폴더에 보탤 작은 선물 정도로 받아 주세요.
노혜리: 너무 좋은 일화인데요. 그리고 사실 저한테는 협업의 문제로 다가오기도 해요.
크리스티앙: 아, 맞아요. 그렇죠. 가장 초기 형태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지금 제가 이해하는 협업의 방식은 〈광주 레슨〉의 판화들을 처음 접했던 2016년과 상당히 달라요. 이제는 사람들이 하나의 작업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협업의 목적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이상 협업이 노력이나 수단, 능력 면에서 반드시 일대일 비율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책임을 통해 조율해나가야 하는 거죠. 각자 무엇을 책임질 것인지? 그리고 이건, 당연하게도, 상호 신뢰라는 조건 안에서만 가능해요. 지금 〈광주 레슨〉이 작가님 작업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도 그런 거죠. 저는 이런 종류의 책임이야말로 더 진보된 협업…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보다는 복잡한 차원의 협업인 것 같아요. 제가 일일이 지시할 필요가 없거든요. 작업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며 형식을 강요할 필요도 없고요. 오히려 현장에 계시는 작가님의 판단에 맡기는 거죠. 작품의 본질과 작품이 탄생한 맥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실 테니까요.
그리고 있죠, 가끔은 작품이 새로운 조건 속에 존재할 수 있도록 기존의 조건을 해체하는 게 마땅할 때도 있어요. 제가 근 몇 년간 해 온 작업의 많은 부분이 상영회 혹은 도통 정체를 이해하기도 어려운 여타 형식들을 통해 다른 작품들을 호스팅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그러다 보니 회의 때 ‘지금은 어느 쪽이세요? 작가로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큐레이터로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같은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럼 저는 ‘아니요, 그냥 동반자예요.’ 하죠. 이런 동반자 관계의 가능성이 요즘 저를 끌어당겨요. 그저 곁을 지켜 주며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 동시에 저 또한 도움을 받는 형태의 협업이요. 작업 안에서 이런 진화와 발전이 일어나도록 지켜보는 일이 너무나, 정말 너무나 소중하고, 자꾸만 더 소중해지고 있어요. 이 모든 생각이 제가 이전에 협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졌던 이해와는 꽤 다르죠.
노혜리: 제가 지금 2016년의 크리스티앙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크리스티앙: 나쁘지 않죠!
노혜리: 프로젝트 전체와 그 모든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또 도전적이면서, 어떤 면에서는 저를 깨뜨리는 경험이기도 했어요. 물론 그 점은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죠. ‘협업이 뭘까?’ 지금은 마음을 좀 내려놨지만, 여전히 협업이라면, 소위 말하는 ‘진정한 협업’이라면 서로 비슷한 이해관계나 그런 걸 공유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반자 관계와 상호 신뢰에 관한 크리스티앙의 생각이 궁금해요. 그런 건 어디서, 언제 발견하게 되나요? 안타깝게도 요즘은 ‘협업’이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잖아요. 협업을 염두에 두고 서로에게 다가가더라도 반드시 상호 신뢰가 형성된다는 법도 없고요.
크리스티앙: 그렇죠. 맞아요, 좋은 질문이에요.
노혜리: 제가 워낙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 것도 있겠죠. (웃음)
크리스티앙: ‘협업collaboration’이라는 단어 안에 ‘함께’, ‘같이’를 뜻하는 ‘co’와 노동을 뜻하는 ‘labor’가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일하거나 노동하기만 하면 협업인 거죠. 실제로 사람마다 아주 다르게 해석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점점 더 깊이 체감하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우리가 문화 분야에서 어떤 작업이나 프로젝트, 혹은 상징적인 집단 활동에 참여할 때 우리 각자는 저마다 완전히 다른 환경과 처지에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캄팔라에 도착했다고 쳐요. 뉴욕에서 캄팔라까지 오는 제 비행기 표 값으로 누군가의 가족은 몇 주, 어쩌면 몇 달을 먹고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는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저는 실현하고자 하는 어떤 아이디어와 함께 캄팔라에 도착해요. 아마 마음이 급하겠죠. 내일 떠나야 할 수도, 다른 할 일이 있을 수도, 아니면 다음 ‘협업’으로 넘어가야 할 수도 있고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속도와 필요를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그들에게 있어서는 의미도 전혀 다를 뿐더러 조건도, 현실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책임은 무엇인지,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결과물은 무엇이며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를 고려해야만 하죠.
저한테 부족한 것이 시간이라면,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단순히 기회나 돈, 혹은 프로젝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른 무엇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들이 저보다 훨씬 시간적 여유가 많다 하더라도 제가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옳겠죠. 또 우리가 가진 경제적 수단이 너무나 불평등하니 숙박 등 비용 부분에서는 제가 더 많이 감당해야 맞고요. 제가 말하는 협업의 공간이 이런 거예요. 함께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수정하고, 제목을 정하는 그 한 시간 동안은 우리가 아주 평등할지 몰라도, 사실 진정으로 평등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려면 서로간의 거리를 인식해야 한다고 자꾸만 더 주장하게 돼요. 그래야 작업 안에서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한 문제들에 있어서도 진정으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각 프로젝트마다 책임의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를 조율하는 것도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영어라고 해서 어디서나 똑같지는 않으니까요. 영어가 모국어도, 심지어 제2외국어도 아닌데도 영어로 대화해야만 하는 상황이 종종 있잖아요. 여기서 영어란 예술 작품일 수도, 영화일 수도, 혹은 누군가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빚어낸 조각품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종종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외부로 전달 가능한 형식 안에 자신을 맞추기를 요구 받죠. 이러한 외부의 압박이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가정에서의 속도, 가정에서의 압박,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압박, 혹은 아직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기대치, 우리 자신의 불안, 우리 자신의 동인. 즉흥적으로 연주하듯 결합해가야 할 것들이 정말 수도없이 많아요. 음악이 되어야 할 것들이요. 꼭 일관성이 목표일 필요는 없어요. 시작과 끝이 있는 짧은 노래 같은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작은 앨범 하나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네, 다시 앨범 이야기로 돌아왔네요.
바로 여기서, 우리가 협업이라고 부르는 것을, 연대(들)로 조금씩 옮겨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요. 제가 말하는 연대란, 나와 완전히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면서, 한 개인을 넘어 사람들의 삶이나 지역 사회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의미해요. 합의나 완전한 일치를 요구하는 환경에서는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정치적 삶을 해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머물고 있는 미국의 이야기를 하자면, 민주당이 황당할 정도로 무력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부분적으로는 연대를 구축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반면 우익을 보면 실상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서로 붙들고 지지하며 보조를 맞출 줄 알아요.
자, 그럼 앞서 말한 개인적인 차원, 즉 우리가 함께 일할 때 개인적으로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문제에서 선거 정치 수준으로까지 넓혀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결국은 의견이 맞는 사람들과만이 아니라, 동의하지 않을 때도 움직일 수 있는 의지의 문제인 거예요. 물론 어렵죠. 예술의 즐거움이란 게 나만의 작은 영역을 통제하는 데 있으니까요. 빛을 통제하고, 소리를 통제하고, 조각의 길이까지도 통제할 수 있죠. 통제할 수 있는 거예요. 사실 예술 말고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잖아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우리가 우리의 통제를, 결합한다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서로 곱해볼 방법은 없을지 궁금해져요. 저의 통제력에 작가님의 통제력이 곱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거죠.
노혜리: 흥미롭네요.
크리스티앙: 물론 평생이나 영원을 약속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특정한 프로젝트나 목표를 위해, 혹은 정해진 시간 동안만 그렇게 해보자는 거죠. 이런 방식이 우리가 협업의 의미를 재고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협업이라고 하면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가깝고 평등하다는 걸 전제하지만, 현실이 그럴 리가 있나요? 부모님이나 파트너의 지원 덕분에, 혹은 다른 사람보다 영어를 잘해서, 혹은 특정 방면에 능력이 좋아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게 표준이 되어서는 안 돼요. 오히려 정반대죠. 어쨌든 저는 평등의 한계를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는 책임의 관점에서 평등을 생각하는, 다른 길을 열어보려 하고 있어요. 가끔은 제가 협업자보다 스무 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일 때도 있죠. 진심으로 괜찮아요. 우리가 그 점을 이해하고 풀어나가려고 하는 한, 저는 정말, 온 마음으로 괜찮아요. 내가 저 사람보다 일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불만의 원인이 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최소한 그 불만을 꺼내어 다룰 수만 있다면요.
아무튼, 보시다시피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망령 같은 질문이에요. 핵심 질문이자 윤리적인 질문이잖아요. 작가님도 이 질문과 씨름해 오셨다는 걸 익히 알아요.
노혜리: 정말 대단한 통찰에, 깨달음마저 주는 말씀이네요. 감사해요. 협업에서 연대로 나아간다는 이 개념이 너무 좋아요. 아까 우리가 이야기했던, 작은 공간을 내어주거나 자신을 조금 내려놓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네. 나의 위치와 상대방의 위치를 이해하는 일 말이에요.
처음 최빛나 감독님과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이 커다란 주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려 보자는 생각이었거든요. 일종의 도전이자 기회였죠. 그런데 과정을 지나오면서 여러 펠로우, 그리고 그들의 작품과 더불어 작업하는 것이 이제는 무엇보다 중요해졌어요. 한 번도 이런 방식으로 작업해 본 적 없는데도 말이에요. 다른 작품들의 궤적과 역사를 소개하며 작업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정말 특별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크리스티앙: 함께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이 자리와 시간, 그리고 관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노혜리: 오프닝 때 꼭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래도 있고, 행렬도 있을 거예요. (웃음)
크리스티앙: 아, 좋은 건 다 있네요. 그럼 놓칠 수 없죠.
노혜리: 그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