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기념비
어떤 일들은 너무나 쉽게 과거의 것이 된다. 그러나 이를 생명력 있게, 가장 활기찬 상태로 유지하며 계속해서 진화할 수 있는 형태로 이끌어가는 것 또한 우리의 과업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하나의 선으로 납작해지고, 우리도 모르는 새 반복되는 과거가 망령처럼 되돌아온다. 살아 있는 기념비의 필요성은 바로 이 같은 인식에서 비롯한다. 기념비는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며, 살기 위해서, 기념비는 숨을 쉬어야 한다. 대다수 기념비처럼 남근적 페티시로 굳어질 것이 아니라, 주변과 내부, 그리고 통로를 따라 움직임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살아있는 기념비로 재편하고 전용함으로써 ‘해방공간’이라는 발상을 품고 생동하게 한다.
이 발상에는 수많은 시작이 있다. 탄생 비화는 배후의 권력 구조를 쉬이 은폐하고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하므로, 다수의 시작을 불러내도록 하자. 가장 최근의 시작점은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이어진 한국의 긴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의 시민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와 광장에 모이기를 반복했다. 이는 최근 역사상 가장 황당하고 부정한 행위 중 하나인 2024년 12월 3일 당시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도화선이 되었다. 3시간도 채 되지 않은 밤늦은 시간,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몰려들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해당 명령은 무산되었다. 군인들 역시 대통령의 명령 수행을 소리 없이 거부했다. 이에 따라 매주, 이른 봄까지 집회가 이어졌고,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이들과 계엄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이들로 군중은 둘로 나뉘었다. 수개월이 걸렸으나, 다행히 헌법재판소는 국가 지도자가 추구한 그 같은 예외 상태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하고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는 곧 재판에 넘겨져 수감되었다.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었고, 이른바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렸다. 어렵게 얻은 그 긴 겨울의 교훈은 전 세대에 걸쳐 공유되었다. 민주적 통치는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투쟁을 통해 쟁취되며, 유지해 나가려는 쉼 없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 역사 속 수많은 전례가 이를 증명한다. 긴장 속에서 시작된 모든 투쟁 후에는, 반드시 지속의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전쟁과 같은 비극에 이른다. 한국인들은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이후 기약 없는 국가의 분단을 통해 이를 배웠고, 그 분단은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이처럼 완결 없는 종류의 투쟁과 성취를 위한 기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긴 겨울의 대치 상황으로부터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기념비의 필요성은 충분한 한편, 기념비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며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름을 짓는 것 역시 하나의 과제다. 나의 초기 단초는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1919-1920)부터 몇몇 불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실제로 세워지지는 않았지만, 타틀린의 기념비 혹은 기념탑은 그 상상된 용도 면에서 특히 매력적이다. 단순히 바라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1층은 대규모 집회장, 바로 위층은 사무실, 그 위층은 정보 센터와 라디오 탑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한편 각 층은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져 각자의 리듬에 따라 끊임없이 회전하도록 설계되었다. 내가 염두에 둔 불상은 ‘등신불’로, 이는 수행 과정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몸 바쳐 스스로 불상이 된 승려의 몸으로 만든 상이다. 보통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내와 기다림의 실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닮았다. 허쉬 키세스 초콜릿을 닮았다 하여 애칭 붙인, 이른바 ‘키세스 시위대’ 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며, 이들은 영하의 기온과 폭설 속에서도 은색 알루미늄 보온 담요를 몸에 두른 채 자리를 지켰다.
LIBERATION SPACE / 해방공간
한국어로 ‘해방공간’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한국이 일본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사이의 과도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는 거의 40년에 달하는 점령 이후 찾아온 환희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그리고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향한 강렬한 열망과 꿈, 투쟁의 시기이기도 했다. 공장이든 학교든, 심지어는 식민 정권이 남기고 간 경찰서든, 그것이 어디든 간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기꺼이 정치적 주체로 나서 함께 변화를 만들고자 했다. 한편 미국과 소련 같은 새로운 외세가 아직 정의되지 않은 국가를 에워쌌고, 마치 그 땅의 사람들이 아닌 자신들이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양 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진정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입장 및 사상차, 그리고 긴장이 조율되어야만 했다. 이분법적 대립으로 붕괴하거나 파편화되지 않고 세상에 새로운 것을 내놓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모순들을 견뎌내고 인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시기는 분단으로 결말을 맺는다. 미군정의 지원 아래 한반도 남쪽에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식민 정권을 대체한 이 반쪽짜리 정부는, 명분은 바꾸었을지언정 그 방식은 그대로 재현하며,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자국 시민들을 숙청했다. 결국 앞서 언급했듯 냉전 체제의 위협 속에서 남쪽의 자유 진영과 북쪽의 공산 진영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두 개의 대립 정권으로 나누어 놓았고, 이 분단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리하여 코넬 장의 말처럼, “한국인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해방에 시달리고 있다.”1 전쟁 직전 북한을 탈출한 조부모를 둔, 그리고 남북의 완전한 단절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라 온 나에게 이 주장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묻고 싶다. 해방에 과연 끝이 있어야만 하는가, 해방에 끝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순간에 재발하고 솟구치는, 매번 새로운 운동으로 피어나 살아가는, 파열과 투쟁으로 점철된 지속적인 실천으로 해방을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방공간의 기원은 단지 점령기 이후 한국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가령 1894년 백산, 양반 계급이 아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동학의 교리를 통해 스스로를 새로운 주권 주체로 인식하고 부패한 국가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조직되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1948년 이후에도 또 다른 해방공간을 거듭 발견할 수 있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이 군사정부의 집회 금지에 저항하고 민주정권을 요구하며 도시를 장악했던 때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해방은 선형적 시간 안에서 궁극적인 목적지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 해방은 무수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간으로서, 시간에 맞선 의식적이고 해방적인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 해방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며 심지어는 예술적인 것이다. 해방공간은 12월 3일에도 그곳에 있었고, 어떠한 억압적 점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할 필요, 그러한 조건이 출현할 때마다 다시금 발견될 것이다.
한국(남한)의 경험을 통해 조명한 이와 같은 해방공간을 다른 (점령된) 나라와도 공명할 수 있는 참조적 틀로서 제시할 뿐이다. 나아가 나라에 대한 개념은 단순히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형식이나 실천의 집합, 혹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인 (내면적) 자기 자신으로 재구성되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의 목적은 독립 국가의 수립이 아니다. 주권은 왕이나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가능한 조건 속에서도 자기 내면에 세계를 짓고 허무는 실천을 하는 이들에게 있다. 어쩌면 이 해방적이고 주권적인 실천이야말로 “미칠 것 같이 아름답다.”2 즉, 미학적 실천의 전형이 아닌가.
요새와 둥지 (한국관)
해방공간이 지속적인 실천이듯, 매 순간은 해방공간에 서로 다른 형태를 부여한다. 1995년도 그러했다. 그해, 옛 제국주의 열강이 자신들의 국가관을 유지하며 세계에 존재감을 투사하는 장소인 자르디니 델라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세워졌다. 한국은 이곳에 국가관을 건립함으로써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헝가리, 네덜란드, 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 국민국가들의 대열에 성공적으로 합류한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해방공간을 생성해 내었는가?
1995년은 한국의 탈식민화 과정이 더 분명하게 표현되기 시작한, 국가 건설 역사의 전환점과도 같다. 그해 일본 정부는 한반도 철수 이후 처음으로 한국 식민 지배를 공식 인정하고 사과를 표명했다. 같은 해 한국 정부는 서울의 심장부인 경복궁 입구에 서 있던 옛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시작했다. 반세기 넘는 시간 역사적 경관 위에 군림했던 이 건물은 광화문 광장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을 끊고 외래의 축을 만들어 옛 왕조의 터에 식민지적 중심을 새겨 넣었다. 과거의 이 육중한 석조물이 사라져 가던 1995년은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설립된 해이기도 하다. 1995년은 실제 ‘미술의 해’로 공식 지정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맞물리며, 식민 이후 나라를 ‘재건하는 예술’은 더할 나위 없이 뚜렷해졌고, 그 가장 명백한 화신으로 한국관이 서 있다.
그리하여, 한국은 어떤 나라가 되었는가? 한국관은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가? 자르디니 내 여타 25개 국가관이나 일반적인 ‘국가적’ 건물과 비교했을 때, 한국관의 형태는 확실히 독특하다. 90평도 되지 않는 한국관은 첫눈에 뚜렷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다. 원통형, 물결형, 직사각형, 정사각형 등 여러 형태가 맞물린 구조로 이루어진 한국관에는 단일한 정면도, 곧게 이어지는 벽도 없다. 그 대신 유리 천장에 닿는 조적 벽과, 나무로 덮인 길고 구불구불한 벽이 있다. 무엇보다 수많은 유리 벽과 문의 존재가 전통적인 전시 제작에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 조건을 형성한다. 이러한 특징은 주변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라군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세세한 제약의 불가피한 결과였다.[^3] 이런 의미에서 한국관의 형태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려 한 분투의 발자취로 읽힐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또 한 번 거울처럼 투영한다.
기실 한국관은 숨겨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관이나 독일관을 방문한 후에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관과 러시아관 사이의 좁은 골목을 지나야만 한국관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곧장 이어지는 길도, 건물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지점도 없다. 한국관은 언제나 다른 국가관 사이, 그리고 곁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관은 주변 옛 제국 국가관들을 내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관은 베니스 시의 허가를 받아 자르디니에 입성하기 위해 가벼운 구조를 가진 집처럼 설계되었다고 하며 전시가 없는 때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거처처럼 개방해 두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한편, 이는 보다 쉽게, 언제든 철거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관이라는 구조물이 한국이라는 국가를 대표한다고 보고 그 모호한 상태에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요새와 둥지》이다. 동시에 이 양가성이야말로 모든 국가에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방공간’ 역시 그 본질상 규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개방성 덕에 요새와 둥지라는 두 조건을 모두 담아내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베어링과 메르디앙
최고은과 노혜리, 두 작가는 한국관을 ‘해방공간’이라는 발상을 위한 기념비로 재편하고 전용하려는 시도의 중심축을 이룬다. 우선 큐레토리얼 방향성이 프로젝트의 토대를 마련하고 일정한 예술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서로 공명하면서도 이질적인 언어를 가진 둘을 초청한 것은 나의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최고은 작가에게 한국관의 외부를, 노혜리 작가에게 내부를 맡아 작업해 달라고 요청하며 두 사람의 작업이 종내 맞닿게 될 것을 기대했다. 이러한 초대는 작가들에게도 꼭 그만큼 그들만의 예술적 방향성을 요구했다. 우리 세 사람의 협업에 질문과 의심, 오해, 그리고 때로 촉박한 기간에 비해 너무나 방대한 과업이 주는 불안을 견뎌 내는 능력이 필요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작업 과정은 애초에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적, 미적, 정치적 방향인 해방적 실천,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명의 서로 다른 주권적 주체들이 하나의 공동 프로젝트를 일굴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실천을 위해 충분히 여지를 남겨 두는 한편, 우리는 여전히 함께라는 점이 사실이 굉장히 뿌듯하다. 특히 우리가 공유하는 접근 방식에서 돋보이는 점은 한국관에 그저 피상적인 변화만을 가하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개입이 강력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고수했다. 역설적으로 이는 한국관을 그 자체로서 더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 즉 건물의 기존 형태와 의미를 명확히 현시하고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예술적 접근이 두 작품으로 열매를 맺었다. 최고은의 〈메르디앙〉과 노혜리의 〈베어링〉이다.
최고은과 노혜리의 예술적 실천은 모두 조각에 뿌리를 둔다. 두 작가는 공간의 맥락을 읽어 내는 탁월한 감각과 함께 자신들이 발견한 사물의 물성에 있어 나란히 진실된 태도를 취하지만, 재료를 선택하고 그 재료를 변주하며 관계 맺는 방식에 있어서는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구별된다.
최고은은 수도관이나 에어컨처럼 집안 공간을 구성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이루는 금속 사물들을 주로 다루며, 이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가시성을 창출하는 데 관심을 둔다. 사물을 자르고 구부리며 주어진 맥락 안에 배치 혹은 배열하고, 이를 통해 안과 밖, 옛것과 새것, 표면과 깊이라는 위계적 구분을 뒤흔들며 보다 총체적인 방식으로 다시 깨어나게 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페미니즘적이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나는 일찍이 최고은의 작업을 침술적이라 묘사한 바 있는데, 이러한 특질이 이번 한국관에서 선보이는 〈메르디앙〉에서도 대단히 명백하게 드러난다.
제목 〈메르디앙〉은 남극과 북극을 이어 경도를 측정하는 자오선과, 우리 몸속 기가 흐르는 줄기인 맥을 아울러 의미한다. 최고은은 한국관, 혹은 한국 자체를 혈이 막힌 신체로 이해한다. 최고은의 눈에 띈 폐색 중 하나는 건물의 원통형 핵심부였다. 본래 나선형 계단이 실내에서 1,2층 공간 사이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으나, 개관 1년 만에 계단이 철거되며 폐쇄된 위층은 이후 창고와 직원 시설로 사용되어 왔다. 최고은은 이 공간을 다시 열어젖히기로 결심했다. 최고은은 자가 살균력과 내구성, 가공성이 뛰어나 전 세계 수도 인프라에 널리 쓰이는 재료인 동파이프를 마치 동양 의학의 침처럼 배치한다. 설령 침이 아닐지라도, 이는 우리의 시선을 안내하는 선이 되어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따라가도록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원통형 공간 가운데 자리한 원형 기둥은 관통과 통과의 장이 되어, 건물의 인프라를 가시화하는 동시에 마치 탯줄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 스스로 언급했듯, 이러한 인프라는 무한한 연결로 존재하며 국경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경 역시 폐색의 일종이다. 횡단의 실천으로서 〈메르디앙〉은 국가 간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한국관과 일본관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이번 협업은 두 국가관 사이 식물로 조성된 인위적인 경계에 긴밀하고도 즉각적으로 개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이전 연작 〈트로피〉를 수행적인 방식으로 〈메르디앙〉 안에 끌어들여 변주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한층 더 확장하고자 한다. 절단되고 구부러진 두 점의 동파이프 조각은 스스로 직립할 만큼 견고하면서도 가벼워 한국관의 영토를 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트로피’는 다른 국가관의 환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최고은의 〈메르디앙〉이 사물을 열어젖히고 발설하며 역동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노혜리의 〈베어링〉은 언뜻 무언가를 에워싸는 듯한 인상을 준다. 부드럽고 섬세한 재료들로 구성된 노혜리의 작업은 관람객을 담아 두거나 머물게 하는 구조로서 훨씬 정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베어링〉의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는 수천 개의 원형 오간자 조각들로 이루어진 들판으로, 한국관의 주 전시공간의 윤곽을 따르는 일종의 막을 형성한다. 이 막은 입구에서 관람객의 시야를 부분적으로 가로막으며, 다소 좁은 통로를 만들어 이들의 동선을 유도한다. 이 통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노혜리가 ‘스테이션’이라 부르는 8개의 독특한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각 스테이션은 방문하고 머물며 경의를 표하는 작은 사원처럼 구상되었다. 전망하는 스테이션, 생활하는 스테이션, 설계하는 스테이션, 기다리는 스테이션, 애도하는 스테이션, 기억하는 스테이션, 수선하는 스테이션, 나누는 스테이션, 이상 얇은 나무, 천, 점토 등 소박한 재료만으로 만들어진 각 스테이션은 구체적인 행동을 지향하며 동사 형태로 명명되었다. ‘베어(bear)’ 라는 동사 자체는 짊어지다, 견디다, 버티다, 관계를 맺다, 안내하다, 탄생시키다, 산출하다 등 여러 상호 연관된 의미를 담고 있다. 〈베어링〉이 ‘해방공간’의 실천을 위한 지지체로 한국관을 치환한다면, 〈메르디앙〉은 그 실천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조건을 설정한다.
노혜리의 작업은 큐레이터와 예술가 사이의 협업이 가장 집약적으로 일어난 지점이기도 하다. 형태의 물성과 물리적 실체에 엄격하게 결부된 최고은의 언어와 달리, 노혜리의 실천은 발화 행위와 (탈)제도화의 실천이 개입되는 수행적 측면을 아우른다. 살아 숨 쉬는 기념비를 만드는 과정에 큐레이팅과 제도적 요소를 결합하고자 했던 나의 요청에 응답하여, 노혜리는 당초 몇 개에 머물렀던 스테이션을 최종 8개로 확장하고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생활하는 스테이션’은 기존 2층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일부 자재를 포용하는 동시에, 한국관 운영 인력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전망하는 스테이션’은 한국관의 지정학적 함의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 ‘애도하는 스테이션’, ‘기억하는 스테이션’, ‘나누는 스테이션’ 등 이외 스테이션 역시 제안에 화답해 준 (초대) 펠로우들의 작품을 포용하며, ‘해방공간’에 관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 보인다. 우리는 또한 오픈콜을 통해 ‘베어러’라 명명한 이들을 기획하고 초대했다. 총 7명으로 구성된 각 베어러는 베니스에 한 달간 머물면서 하루 두 차례 8개의 스테이션을 차례로 이동하며 각 장소가 요청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노혜리가 자신의 오브제와 구조물을 둘러싼 수행적 행위를 타인에게 ‘위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작가는 이 방식을 전방위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베어러와 펠로우
실은 모든 관람객이 한국관의 잠재적인 베어러이자 펠로우이다. 관람객은 ‘해방공간’이라는 발상을 위해 전용된 이 기념비적 장소를 활성화하고 활용하는 주체이다. 공식적으로 호명되고 초대된 베어러와 펠로우는 단지 본을 보일 뿐이다.
초대펠로우로는 한강, 김후주, 이랑, 황예지, 크리스티앙 니암페타가 참여한다. 이들 각자는 ‘해방공간’을 생성하는 서로 다른 역사적 결절의 지점에 천착하며, 실천과 목소리는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정치적 지형을 가로지르며 작동하고 있다.
소설가 한강은 조각 작품 〈장례식〉(2018)을 선보인다. 눈 덮인 풍경 속 줄지어 서 있는 그을린 나무 막대들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1948년 당시 신생 한국 정부와 미군정이 주도한 반공 작전 중 벌어진 제주 4.3사건을 알레고리적으로 다룬 저서 『작별하지 않는다』의 도입부를 연상시킨다.
가족 소유의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후주는 2024―25년 겨울 탄핵 집회 당시 거침없는 목소리로 소셜미디어와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후주는 저술 및 공적 활동을 통해 남태령에서의 경험을 농민, 퀴어 공동체, 그리고 여타 소외된 집단 사이의 전례 없는 연대와 돌봄이 목격된 ‘해방공간’으로 명명하고 이론화했다. ‘나누는 스테이션’ 내 노혜리 작가가 제작한 항아리 하나에는 김후주가 속한 전국여성농민 회총연합이 수집하고 보살펴 온 한국 토종 씨앗을 따라 만든 점토구슬이 담겨 있다. 생명다양성 자체이자 그것을 표상하는 토종씨앗은 인류 의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항아리, 그곳에서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만들고, 아카펠라로 동료들과 함께 연주한 곡이 흘러나온다. 〈우리의 ㅁ〉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곡은 과거와 현재의 해방공간에 있는 이들을 향하며, 그들이 역사를 일구어 나갈 수 있는 주권적 주체임을 일깨운다. 빈곤과 불안, 폭력, 갈등, 불가피한 죽음으로 점철된 삶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이랑은 진솔하고 거침없는 태도로 표현해 왔다. 이랑의 노래는 국가라는 틀 대신 베어러들, 그리고 취약한 이들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사진과 글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황예지는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후 국회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순간부터,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기까지 매주 토요일 열렸던 탄핵 집회를 기록했다. 이 기록 안에는 일회용 카메라를 건네받은 다른 이들이 황예지의 요청으로 직접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황예지의 글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작가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마주한 국가적 투쟁과 비극의 연속을 성찰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 나라를 사랑하지?”라는 문구가 황예지의 일지 (24.12.03―2025.04.04)에 등장한다. 고통과 반복되는 투쟁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황예지의 기록과 글은 역사가 계속 진화하며 새로운 해방적 주체들을 탄생시키고 있음을 긍정한다.
펠로우십은 비단 한국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르완다 출신 작가 크리스티앙 니암페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직후 생겨난 ‘광주시민미술학교’의 이미지들에 응답하여 제작한 72점의 리놀륨 판화 시리즈 〈혁명의 장면들〉을 선보인다. 갈등이 끊이지 않는 탈식민 사회의 맥락에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묻는 니암페타의 현재진행형 연구와 궤를 같이 하며, 이 판화들은 국가 폭력과 민간인 사이의 폭력이라는 트라우마적 경험에 대한 증언인 동시에 스스로 다스리고, 치유하며, 놀고, 살아가는 인간의 힘을 긍정한다.
펠로우가 나누어 준 위 작품과 이야기들은 관람객이 〈베어링〉의 각 스테이션을 이동하고 〈메르디앙〉이 열어젖힌 한국관을 안팎으로 순환함에 따라 마주하게 된다. 각 이야기는 국민국가라는 존재가 요새인지 아니면 둥지인지 질문을 던지며, 취약한 이들에 의한, 취약한 이들을 위한 국가의 가능성이 출현하는 공간을 그려낸다.
베어러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거쳐 온 세대적 기억, 그것이 형성한 삶의 궤적을 몸소 보여 주는 존재로서 전시 과정을 의례적인 순간들로 강조한다. 기획 초기, 노혜리 작가는 탑 주변을 도는 한국 불교 사찰의 탑돌이 의례를 공유하며, 이를 관람객이 한국관을 ‘해방공간’의 기념비처럼 경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안했다. 베어러가 이 탑돌이 행렬을 선도한다.
네트워크
베니스비엔날레는 7개월간 지속된다. 전시로서는 긴 시간일지 몰라도, 과거의 찰나적 사건을 동결하고 더 나아가 영속화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한 기념비로서는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기념비는 시간에 박제되지 않고, 맥락을 활용하며 모습을 바꾼다. 나는 이 기념비가 다양한 형태와 장소로 끝없이 진화하여 종내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에 이어 민주적인 광장 문화가 펼쳐져 온 광화문에 세워지기를 희망한다. 사실 광화문 자체가 이미 하나의 ‘해방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각각 서울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귀국전 및 순회전은 펠로우십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국내외 곳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방공간’을 일궈온 다양한 이들을 연결하는 초지역적·초국가적 네트워크 구축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서로를 연결하고 엮으며 감아 나가는 이 기념비는 해방공간이라는 실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그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도구로서 작동할 것이다.
모든 것에는 여러 시작이 있다는 생각으로 돌아가, 본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며 하와이를 빼놓을 수는 없다. 흔히 알려진 관광지로서의 하와이가 아니라, 주권 왕국이었던 하와이, 한 세기 넘는 미국의 불법 점령에도 불구하고 ‘땅에 대한 사랑 (Aloha ‘Āina, 알로하 아이나)’을 통해 문화와 언어, 정신을 지켜 온 원주민과 비원주민 연대공동체가 빚어낸 하와이 말이다. 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에 임하며 ‘알로하 아이나’라는 개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단순한 번역을 넘어, 이 두 단어는, 개별적으로나 결합된 상태로나, 복합적이고 깊은 의미와 실천을 담고 있다. 이는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자칫 넓은 의미에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의 한 형태를 가리키는 듯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요새’가 되어버린 유럽이나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극단주의를 경계하는 이들에게 이 개념은 공포로 다가오기보다, 독립과 자결, 진정한 의미의 해방과 주권을 향한 모든 투쟁의 심부에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하와이 원주민 예술가이자 활동가, 학자인 자메이카 헤올리멜레이칼라니 오소리오는 2024년 저술이자 강연인 『E Mau Ke Ea: 주권, 성역, 공동체 해방』에서 이를 정확히 짚어냈다. 오소리오가 던진 질문이 지금도 나에게 생생한 울림을 준다.
그리하여 묻는다. 피난처도, 돌봄도, 진정한 안보도 없는 주권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혹은 우리의 서파푸아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을 막을 수 없다면, 아니, 막으려 하지 않는다면, 주권이 무슨 소용인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제국주의 국가 연맹의 폭정 아래 살아가는 모든 민족의 해방을 위해 온전히 활용되지 않는다면, 주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4
오소리오는 비록 ‘점령된’ 나라에 살고 있을지라도, 해방과 주권 은 제도적 영역이 아닌 일련의 실천 속에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는 하와이가 주권을 결코 잃지 않았으며, 해방적 실천의 감각은 어떠하며 그 모습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는 믿음을 확인시켜 준다. 오소리오는 본인의 저술에서 하와이가 팔레스타인과 같은 또 다른 ‘점령된’ 나라와 오랜 시간 연대해 왔다는 말로 운을 떼는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국가라는 틀을 비판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긍정함으로써,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가 국가성을 다르게 이해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내 친구 유미가 강조하듯)5 이른바 ‘포스트 글로벌’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나는 결코 국민국가를 옹호하지 않는다. 보다 엄밀하게, 오늘날 세계를 구성하는 국민국가 체제는 제국주의 식민 시대에서 비롯된 비교적 최근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형태인 양 군림하고 있다. 동시에, 제도적 장치로서의 ‘국가’와는 구별되는 ‘나라’ 혹은 ‘국가성’이라는 모호한 용어들은, 실천과 문화의 공동체, 그리고 그들을 지탱하는 땅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층위들은 부정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존속하며 일상 속에서 자기 통치의 양식을 형성하는 다양한 차원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지난 겨울 한국의 시위현장에서 들려온 어느 시민의 목소리, “이 나라, 그냥 고쳐 써야겠다”[^5]라는 말이 계속해서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바로 나라다.
또 하나의 시작점이자,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친구인 에이버리 고든은 ‘유토피아적 주변부’라는 개념을 일러 주었다. 이는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세상을 꿈꿨던 이들을 다룬다. 이들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쉽게 잊히며, 때로는 아예 부정당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해방공간’이라 불리는 시기에, 여수와 순천에서 동포를 살해하라는 신생 한국 정부의 명령을 거부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그들은 당시 갓 수립된 국가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었고, 오늘날 기억의 정치 안에서 주로 회자되는 것은 대부분 국가의 잔학함과 그들이 입은 피해 사실뿐이다. 이에 에이버리는 ‘해방공간’ 그 자체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이라 요청한다. 권력의 명령을 거부했던 이들이 서로를 돌보고, 함께 움직이며, 살고, 일했던 방식 속에서 과연 무엇을 꿈꾸고 실행에 옮겼는지를 살피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친구, 동료, 혹은 이웃이라 불리는, 내 일상을 함께 채워 가는 이들의 존재를 꼭 강조하고 싶다.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기여자들이다 (그 중의 일부가 명명되는 크레딧을 확인 바란다!). 가족의 사랑, 오랜 우정과 새로운 인연들, 그리고 이웃의 다정함이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관과의 역사적인 협업 또한 마찬가지다. 아라카와 에이와 다카하시 미즈키는 2010년대 초반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로, 우리는 때로 함께 작업하고 때로 그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것이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실천이었다.
조예진과 김서경이 디자인한 우리 프로젝트의 상징적인 이미지는 사발통문에서 착안했다. 사발통문은 19세기 후반 동학농민혁명 당시 사용된 원형 기명 양식이다. 이는 모든 참가자를 위계 없이 평등하게 인정하며, 이를 통해 지도부를 향한 표적 공격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사발통문 모티프는 하나의 빛줄기로 진화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연결되는 관계들 속에서 가능해진, 어둠 속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 바로 ‘해방공간’이다.
- 1 코넬 장, 『균열된 해방: 미군정 아래 한국』(하버드대 출판부, 2025년), 10쪽.
- 2 “해방 4년 만에…해방공간의 격정, 흥분, 열광, 긴장, 불안 따위가 사라져 버린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다. \[…\] 그렇지만 병든 서울의 한 곳에 새 나라를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장환은 ‘미칠 것 같이 아름답다.’라고 했다. \[…\] 도시의 악취가 아닌 해방공간 서울의 힘을, 다시금 해방공간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읊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임하,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철수와 영희, 2015년), 17-18쪽.
- 3 해당 주제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는 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의 큐레이터인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에 의해 수행되었다. 전시도록인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을 참고하라.
- 4 자메이카 헤올리멜레칼라니 오소리오, 『E Mau Ke Ea: 주권, 성역, 공동체 해방』, 아메리카 원주민 및 토착민 연구 12, 제1호 (2025년 봄): 124-138쪽.
- 5 이 목소리를 포함하여, 최근 한국의 집회 문화를 상징하는 여러 자유 발언들은 이지완에 의해 기록 및 필사되어 『말빛』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무상 배포되었다. 전체 텍스트가 담긴 PDF 파일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UNzIKZAn6kuQS6m84NgnOkutYoNl6viq/vi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