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펠로우
대담: 조각, 노래, 나타나기

이랑: 저는 일단 〈메르디앙〉이라는 제목부터 궁금해요.

최고은: 아, ‘Meridian’은 지리학에서 ‘자오선’을 뜻해요. 말하자면 경도선이죠. 지구를 관통하는 가상의 수직 축으로, 자연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통제나 관리를 위해 인간이 설정한 개념적인 선이라 할 수 있죠.

파이프도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잖아요. 제가 작업 재료로 사용하는 가전이나 가구 같은 기성품도 그렇고요. 전기나 배관은 물과 에너지의 흐름을 관리하고 우리의 삶을 이루는 기본 인프라인데요, 저는 주로 그런 것에 눈길이 가요. 보이지 않지만 생활을 지탱하는 그런 에센셜한 바디들? 그리고 그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고 쓰기보다는, 조각의 몸으로 다시 상상해보면서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부순다거나, 좀 더 유연하게 조각적으로 다룰 수는 없을까 늘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 점에서, 도시 환경 기반 인프라에 대한 기존의 관심사가 비엔날레 한국관이라는 국가 단위의 장소성을 만나고, 무성한 나무와 숲에 둘러싸인 자르디니 공원이라는 강력한 자연 환경을 인식하면서 개념적으로 확장되고, 그렇게 튀어나온 작업이 〈메르디앙〉이에요.

수풀이 우거진 자르디니 공원 속, 여러 국가관들이 서로 경계 지으며 만들어내는 그 관계망 속에서 한국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실린더를 지구본처럼 상상하게 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메르디앙이라는 전지구적인 시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한국관의 실린더 공간이 원기둥의 중심축을 따라 회전하는 순환체나 통로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그 안팎을 오가고 가로지르는 선들을 상상하면서 그 선들이 기존의 위도·경도처럼 구분하고 체계를 만들어내는 선이 아니라, 전환시키고 순환시키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선이었으면 했어요. 호처럼 탄력적이고 유연한 선이요.

이랑: 유연한 축이 되는 느낌이네요. 주변에는 거대한 네모 형태의 국가관들이 있고.

최고은: 네, 맞아요. 언뜻 한국관 실린더 공간에서 출발하고 응집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한국관 전체와 그 이면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감각을 주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확장 가능성이나 움직임의 범위가 물리적으로 딱 정해져 있다기보다, 관람객의 상상 속에서 거듭 결정되는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계속 확장될 수 있는 느낌으로요. 실제로 일본관과 한국관 사이의 수풀 경계가 일종의 ‘국경’처럼 느껴진다는 사실도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아세요?

이랑: 그 사이의 경계요?

최고은: 네, 일본관이랑 한국관 사이에 낮게 심어 놓은 수풀이 있어요. 각 나라가 자르디니 공원의 부지를 구입해 그 위에 국가관 건물을 짓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일본은 일본관의 영토/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그 경계를 따라 식물을 심는 방식으로 근접한 한국관과 일본관을 구분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국경처럼 볼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게, 한국관과 일본관을 구분 지으려 수풀을 심어뒀는데도 사람들이 별로 개의치 않고 수풀을 가로질러 이동하더라고요. 먼 거리를 돌기가 귀찮으니까요. 그렇게 사람들이 수풀을 가로질러 다니다 보니, 자주 건너다니는 부분은 수풀이 듬성듬성해지고 개구멍처럼 길이 나기도 해요. 그걸 보면서 자르디니를 자연과 국가관이라는 질서가 함께 얽혀 있는 공간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인간이 설정해 둔 경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또 식물이 계속 자라고 변화하면서 흐려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메르디앙’ 개념을 떠올렸어요.

아, 그래서 저는 실제로 그 경계를 넘는 파이프 선을 한국관과 일본관 사이 수풀에 설치하기로 했어요. 바느질 스티치처럼요.

이랑: 파이프로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서로 협의가 된 건가요?

최고은: 그렇죠. 그게 이제 감독님이 주변 국가관과의 어떤 협업을…

이랑: “저기요, 좀 넘어갈게요~!” (웃음)

최고은: 서로 “넘어갈게요~!” 네. (웃음) 언젠가 수풀에 설치할 파이프 선을 두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바느질하는 손의 움직임과 그 감각에 대해서요. 실제로 바느질할 때 먼저 몇 땀을 천의 앞뒷면에 느슨하게 꿰어 두잖아요. 그걸 마지막에 한 번에 쭉 끌어당기면 천에 주름이 잡히면서 내 쪽으로 끌려오죠. 그 실을 내 쪽으로 당기기 직전의 상태를 상상하면서… 그 수풀 파이프 선을 만든다면?

이랑: 아아! (웃음) 저는 이런 대화가 진짜 새로워요.

최고은: 거의 뭐… 망상에 가깝죠, 지금. (웃음)

이랑: 개념이랑 이미지를 연결해서 이야기해 주는 방식의 대화를 제가 별로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지금 들으면서 많이 체감하고 있어요. 〈메르디앙〉이란 제목을 푸는 방식도 그렇고요.

최고은: 아, 맞다. 말씀드린 대로 ‘메르디앙’은 한국어로 ‘자오선’인데요, ‘자오’의 ‘자(子)’에는 어떤 시작이나 탄생의 감각이 있고, ‘오(午)’는 정오, 절정을 뜻하더라고요. 그게 혜리 작가님 작업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어떤 생성이나 시작의 감각 같은 것들이요. 또 이 ‘자오’라는 개념은 실린더랑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나선 계단을 통해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가 바다를 조망할 수 있게 하는 통로였다는 점에서 실린더는 한국관의 비전을 건축적으로 풀어낸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한국관의 시작과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메르디앙’이 동양 의학에서 신체 속 기가 흐르는 길, 경락을 의미한다는 점이었어요. 침술을 연상시키는 개념이기도 하죠.

이랑: 혈자리.

최고은: 네, 혈자리. 그런 뜻도 있더라고요, ‘맥’ 같은 개념인 거죠. 이걸 영어로 옮기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맥’이나 ‘혈’ 같은 개념을 적확히 표현하는 말이 안 떠오르더라고요.

이랑: 그게 ‘메르디앙’이었던 거네요.

최고은: 네, ‘메르디앙’이 그런 맥락을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끌어올 수 있는 제목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메르디앙’이라는 제목이 나오기 전 가제는 ‘니들즈(Needles)’였어요. ‘니들즈’가 바늘이라는 물체, 즉 침 자체를 가리킨다면, ‘메르디앙’은 그 침이 만들어내는 작용이나 흐름에 더 가까운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전에 감독님이 제 작업을 두고, 경계를 관통해서 그것이 놓인 맥락의 에너지를 진동시키는 일종의 침술 같은 행위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감각이 더 확장되고 전개되어 이번 작업이 된 것 같아요. 한국관을 하나의 폴리티컬 바디로 본다면, 침술이 주는 고통과 회복의 감각이 지금 한국이 놓인 상황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고요.

pierce, penetrate 와 달리, needle은 찌르고 관통하는 상처이면서 치유와 봉합(연결)의 맥락 역시 가지고 있는 단어였어요. 어원을 쫓다가 needle과 nest가 계열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요, 둥지를 만드는 동작이 사실상 나뭇가지처럼 가는 선을 꿰는 행위에 가깝고, 둘 다 선을 다루고 꿰어 연결한다는 행위로서 닿아 있는 거죠. 둥지가 딱딱한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서로 엮어서 만든 구조잖아요. 바늘 같은 날카로운 선이 관통하며 얽혀서 보금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요새와 둥지가 대립적이면서도 포개질 수 있는 구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하면서 제비가 집 짓는 과정을 영상으로 찾아보기도 했어요. 몇 개월에 걸쳐 둥지를 짓더라고요. 물어 온 나뭇가지를 계속 엮어 나가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성글게 시작했다가 점점 촘촘해지면서 형태가 만들어져요. 밖에서 볼 때는 가지들이 무질서하게 뾰족뾰족 튀어나와있지만, 내부 구조는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가 돼요. 지붕이든, 전봇대든 주변 환경에 맞게 계속 엮으면서 형태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새들이 가지를 물어 오는 것처럼, 파이프 선들이 한국관이라는 요새를 관통하며 둥지화하는 상상을 했어요. 사실 국가관들은 모두 어떤 점에서 각자 영토의 경계를 세우며 요새화된 상태이기도 하니까요.

이랑: 신기하다. 저 작가님한테 궁금한 게, 평소에도 이렇게 개념을 아득하게 연결하고 그 다음에 이미지를 메모하시는 편인가요?

최고은: 사실 방법을 정해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방법을 써서 만들어 내는 편이에요. 닥치는 대로… 드로잉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재료도 보고, 글도 쓰고, 모형도 만들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요. (웃음) 작업을 진행하면서 매 순간 직관적으로 방법을 바꿔가며 전개해 나가는 편이에요. 이번 작업이 장소 반응적인 데 반해 베니스 현장은 워낙 멀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감이 흐려지는 점이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직접 만질 수 있는 실물 모형을 이리저리 만들어 보면서 감각을 붙잡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작업이 놓일 공간을 실제 규모로 조성해서 시뮬레이션해 보기도 했고요.

이랑: 어떻게 만들어요?

최고은: 작업실에 1대1 비율의 실린더 공간 모형을 만들었어요. 필요에 따라 다양한 축척이나 구조, 소재를 바꿔가면서 건물과 작업 모형을 만들기도 했고요. 사실 재료를 보고 다루는 시간이 가장 많아요. 재료가 다루어지는 뉘앙스를 느끼기 위해 공장에서 소재가 가공되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저는 파이프를 반으로 갈라서 사용하거든요. 그러면 반원 형태가 되면서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파손되지만, 대신 훨씬 더, 약간 호처럼, 어떤 탄성이나 유연함이 생겨요. 조각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그 지점에서 가능성이 생긴다고 느끼고요. 아, 얼마 전에 촬영한 게 있는데, 같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보통 파이프를 ‘자른다’기보다 ‘터뜨린다’는 표현을 쓰거든요. 실제로 이걸 해 보면…

이랑: 파이프를 터뜨리는 비디오예요?

고은: 네. 이런 재료의 장면은 완성된 결과물에서는 보이지 않죠. 작업하면서 저 혼자 보게 되는 설레는 순간이기도 한데요. 지난번 비엔날레 홍보 촬영 때 기회가 되어서 촬영을 부탁했어요. 보시면 왜 제가 파이프를 ‘자른다’가 아니라 ‘터뜨린다’고 표현하는지 아실 거예요. 작업하면서 이런 결정적 순간들이 있다는 것, 이런 감흥 때문에 제가 하드한 소재를 선택하기도 하고요.

이랑: 혈이 뚫리는 느낌으로 팍 터지네요!

최고은: 네, 구조가 파열되면서 순간적으로 파이프 안의 내력이 터져 나오는 장면이에요. 사실 이번에 작업하면서 이 영상에서처럼 마치 한국관의 내력이 터지는? 그런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우연히 실린더 중심 기둥의 내부를 보게 되면서 보이지 않도록 감춰져 있던 어떤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더 실감하게 됐거든요. 화장실 배관이나 전기선처럼 한국관 전체를 작동시키는 인프라가 지름 1미터 정도 되는 그 중심 기둥 안에 응축되어 있어요. 원래는 다 덮여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요.

그리고 그곳이 원래 나선 계단이 설치되어 있던 자리였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실린더 공간이 원래 나선 계단을 통해 건물 내부에서 외부로 나아가 옥상에서 바다를 조망하던 통로였는데, 나선 계단이 철거된 후로는 사실상 창고처럼 정체된 상태로 남아 있었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저희가 그 공간을 철거하고 정리하면서 다시 통로로 열었잖아요. 그 과정에 거기에 있던 물건들을 혜리씨의 스테이션 작업으로 옮기면서 공간의 변화가 실제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이런 물리적인 개입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번 작업이 결국 그런 상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고요. 보이지 않던 흐름을 다시 열고, 잠재되어 있던 힘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점에서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실린더 내부 기둥을 열고 정체되어 있던 실린더의 흐름을 복원하는 상상에서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파이프를 반으로 터뜨려 파열시켜, 유연하고 탄력적인 상태로 전환해서 한국관과 실린더 공간을 관통하도록 했고, 그러면서 한국관을 둘러싼 여러 경계를 가로지르는 \<메르디앙>의 선들이 만들어졌고요.

아, 그리고 그날 파이프를 꽂는 영상도 찍었거든요. 이게 이제, 제가 벽에…

이랑: 벽이 말랑말랑해요?

최고은: 아니요, 아니요.

이랑: 어떻게 꽂는 거예요? 벽에 미리 구멍을 뚫어 놓은 거예요?

최고은: 실제로 길을 내죠.

이랑: 그럼 진짜 물리적으로 꽂는 거네요. 저는 붙이는 건 줄 알았어요.

최고은: 영업 비밀입니다. (웃음)

이랑: 오케이, 그러면 꽂힌 걸로. (웃음) 진짜 신기하다. 작가님 뇌가 돌아가는 방식이 너무 신기해요. 예전에 미술 작가랑 협업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분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무언가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뭐가 나타나는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저는 대부분 텍스트로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그분은 거의 이미지로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는 사람인 것 같고, 뭐든지 언어로 먼저 정리되는 편이에요.

최고은: 곡 작업하실 때도 그런가요?

이랑: 네. 말이 먼저고 멜로디는 그 말을 태우기 위한 도구 같은 느낌이에요. 말(words)을 태우는 말(horse). 말을 멜로디에 얹어 이렇게 저렇게 불러 보면서 만들어 가는 식이에요.

최고은: 근데 말은 글이랑 또 다르지 않나요?

이랑: 어떻게요?

최고은: 말은 발음이나 리듬같은 요소들이 같이 작동하는게 있달까요, 그에 비해 글은 대체로 정제 과정을 더 거치는 것 같고요.

이랑: 그렇긴 하죠. 책에 쓰인 텍스트랑 비교하면 특히 그렇고요. 크게 차이가 있다면 ‘읽는 매체로 갈 거냐, 듣는 매체로 갈 거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처음부터 완성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메모를 하니까, 그 메모를 ‘듣는 말’에 가깝게 정리할지 ‘읽는 말’에 가깝게 정리할지를 고민하거든요. 시작이 되는 메모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장르가 나뉘는 거죠. 노래가 될 때도 있고, 낭독이 될 때도 있고, 희곡이나 영화 대본 같은 스크립트가 되기도 하고, 소설이나 에세이, 시가 되기도 하고요. 매체에 따라서 형태가 달라지는 거예요. 처음부터 완성된 문장을 쓰기보다는 메모를 쌓아 두고 그걸 보면서 적절한 매체를 선택한 다음, 그에 맞게 변형해 나가는 방식인 것 같아요.

최고은: 이번 작업은 어땠어요?

이랑: 저는 이번에 곡을 만들었어요. (웃음)

최고은: 알죠, 알죠.

이랑: 일단 너무 뿌듯해요! (웃음) 이번에 꼭 구전 민요 같은 곡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몇 년 전에 한동안 판소리/민요 교실을 다녔었어요. 속이 너무 막혀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거든요. 개인적인 일로 외출이 쉽지 않아서 답답함이 쌓이던 시기였어요. 판소리/민요는 그 당시 서민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잖아요. 대부분 작자 미상에 “이 민요의 이 줄은 누가 지었다 카더라”하는 식으로 전해지는 편이에요.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은 굉장히 진취적인 6-70대 여성분이셨는데, 제가 소리지르려고 수업에 오는 것도 잘 알고 계셨어요. (웃음) 속이 답답하면 언제든 와서 마음껏 소리지르라고 하셨고요. 그런데 민요를 보면 가사에 여성혐오적인 내용이 정말 많아요.

최고은: 네, 그렇죠. (웃음)

이랑: ‘저 마을의 저 여자가 예쁜데 어쩌고저쩌고 싶다’는 가사가 많은데, 지금의 정서랑 맞지 않는 가사면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선생님께서 속시원히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부르고 싶은 내용으로 바꿔 불러도 된다고요. 그게 바로 민요의 특성이라는 거예요. 누구나 지금 하고 싶은 말을 비슷한 멜로디 위에 얹어서, 이 사람 저 사람 자기 이야기를 부르다 보면 결국 어떤 말들이 구전되어 민요로 살아남는다는 거죠.

혼자 그런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요. 처음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말이 살아남는지 한번 보자’라는 연구자 같은 태도가 있죠. 동시에 의도를 하기도 해요. ‘이 말은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라는.

그간의 음악 작업을 훑어보면, 저는 말이 많은 음악가예요. 음악의 다양한 요소 중에서 가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 큰 편인 음악가인데, 따라 부르기 어렵고 외우기 어려운 특성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박근혜 퇴진 집회가 열리던 때, 2집 앨범 《신의 놀이》가 나왔어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집회도 많이 생겨나던 시기였죠. 2집의 타이틀곡 〈신의 놀이〉 가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로 시작해요. 이 노래가 발표된 뒤, 여러 집회에서 곡을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 노래를 집회에서 틀어도 되느냐”고요. ‘부를 수 있냐’가 아니라, ‘틀어도 되냐’는 점에서 ‘아, 내 노래는 따라 부르기 어렵구나’를 깨닫게 됐어요. 그 뒤로 사람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따라 부를 수 없게 만들어 놔서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면서.

그런데 진짜 어렵더라고요. (웃음) 간단하면서도 특색 있는 말을 만드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던 즈음에, 가사로 쓰지 않을 말들을 정리해 놓은 적이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써서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단어들이요. 예를 들면 ‘사랑’ 같은 말.

최고은: 그러니까 너무 전제된 말이나, 관습적으로 소모된 표현 같은 거요?

이랑: 그렇죠. ‘하늘’ 같은 거. 작년에 『기타를 작게 치면서』라는 제목으로 제 가사 전체와 에세이를 함께 엮은 책을 냈는데, 거기에 2008년 당시 제가 메모장에 써 둔 ‘가사 금지어’ 메모가 실려 있어요. 꽃, 바람, 구름, 사랑, 엄마… 아무튼 그런 말들이 쭉 적혀 있거든요. 그런 말을 안 쓰려고 애를 쓰면서 지금까지 곡을 만들어 왔던 거죠. 제가 ‘사랑해요’ 대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라고 해도 결국 사랑을 말하고 싶구나, 하고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잖아요.

그런데 민요를 만들려고 하니까 ‘사랑해요’ 같은 말이 꼭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이런 말들이요. 그래서 만드는 과정에서 고군분투했어요.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려고 하면서.

최고은: 그런 표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애들과 수업하면서 작업 제목이나 작업 노트를 쓸 때 이런 단어는 제외하고 표현해 보는게 어떨까 하고 제한을 두어 본 적도 있어요.

이랑: 무슨 단어예요?

최고은: 비슷해요, 비슷한데.

이랑: ‘소통,’ ‘연결’... (웃음)

최고은: 네, 그런데 미술도 매우 언어 의존적인 매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작업을 정확히 표현할 언어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작업에 대한 확신을 얻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제목이 작업을 완성해 준다고 느끼는 거죠. 적확한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더 단순해기도 하고요. 아니, 어쩌면 조금 더 떳떳해진다는 감각에 가까울까요.

이랑: 떳떳하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생겼다! 저는 떳떳한 사람이 됐습니다! (웃음) 얼마 전에 어떤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너는 너의 일이 뭐라고 생각하냐? 너의 직업이 뭐냐? 너는 뭐 하는 사람 같냐?”라고요. 그래서 한참 생각하다가, “그냥 존재하는 게 내 일인 것 같다”라고 대답했죠. 그게 무슨 말이냐면, 저는 꽤 많은 사회운동 현장에 나가 노래를 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활동가의 일과 제 일의 구분이 점점 헷갈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마다 고민이 되는 됐어요. 노래라는 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건가. 이렇게 누군가 맞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맞아 주거나 지켜 주는 게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활동가로 살아야 할지 예술가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저를 불러 주는 다양한 운동 현장의 활동가들이나 시민들을 보며 ‘저들은 왜 나를 부를까’ 생각해 봤거든요. 결국은 노래할 사람이 필요한 거더라고요. 현장에서 계속 외치고 싸우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노래가 꼭 필요한 거예요. 노래하는 사람이 멋진 차림새에 단정하게, 예쁘게 하고 오면 더 좋고요. 현장에서 싸우는 활동가들은 너무 지쳐 있고, 굉장히 피폐한 상태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럴 때 저까지 지친 모습으로 있기보다는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 입고 귀한 악기와 함께 나가 10분이든 15분이든 노래를 하는 게 훨씬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집회 현장은 콘서트장이랑은 완전 다르잖아요. 조명도 그렇고 음향도 아무튼 공연자에게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노래를 잘 부르고 잘 들리게 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한 공간에 가게 되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도 처음에 고민이 많았어요. ‘이렇게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부르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나는 뭘 해야 할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다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노래가 잘 들리느냐, 내가 잘 부르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는 게 중요한 거라는 걸요. ‘어떤 가수가 우리의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인지한 순간 그런 스트레스가 다 사라졌어요. 거기에서 제가 립싱크를 하든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 순간을 필요로 하는구나. 내가 나타나는 순간을 필요로 하는 거구나. 그렇게 느끼게 됐어요.

최고은: 나타나기.

이랑: 네. 그래서 베니스비엔날레가 어떨지 상상을 해보자면, 아직 가보지는 않았어도 아무래도 콘서트장 같은 환경은 아닐 거잖아요. 적잖이 스트레스 받는 조건에서 노래를 하게 되겠죠.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가 새로 만든 민요를 함께 부르는 게 중요하다. 노래가 한국어라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뿐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 다 같이 소리를 내는 일 자체가, “여기 사람이 있다”는 걸 노래하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최고은: 저도 이번 작업은 베니스에 가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설치가 되고, 펠로우를 비롯한 여럿이 함께 놓이며 하나의 문맥을 이룰 때,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 사람들이 들어오고, 관계가 만들어지고, 움직임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보게 될지가 궁금해요. 설치를 마친 이후로도, 전시 기간 일어날 일들을 잘 지켜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협업에 대한 경험으로서도요.

저희가 오늘 계속 ‘말’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말도 결국 움직이는 거잖아요. 오프닝 이후 오갈 사람들에게서, 그 외로도 다양한 곳에서 작업을 둘러싼 말이 퍼져나가면서 또 다른 파장이 만들어질 테고요.

이랑: 오프닝이 기대된다. 오프닝 퍼포먼스 때 이 노래를 아카펠라로, 목소리만으로 부르고 싶거든요.

곡 제목이 〈우리의 ㅁ〉인 이유는,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단어들이 갖는 어떤 울림 때문이에요. 약간 “옴마니밧메훔”처럼, 발음했을 때 ‘음-’ 하면서 사람의 몸을 울리는 발음이 있어요. 그런 발음을 모아서 노래하면 부르는 사람의 몸도 내내 울리게 되는 거죠. ‘이’라고 할 때랑 ‘음’이라고 할 때 울림은 굉장히 다르거든요. 몸 안쪽을 울릴 수 있는 단어를 모아 “우리의 몸, 우리의 님, 우리의 배움…” 이런 식으로 하나씩 이어 나갈 거예요.

노래 가사를 쓰면서 너무 짜릿했던 게 또 있는데요. 가사에 ‘얘들아’라는 말을 썼어요. 제가 드디어 중년이 돼서 ‘얘들아’라고 해도 이게 말이 된다. (웃음) 이 부분에서 굉장히 희열을 느꼈어요. 제가 20대 여성 싱어송라이터였다면 ‘얘들아’라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좀 좁을 수 있거든요. 근데 만 40세가 된 저는 누가 봐도 중년 여성이잖아요. 그러니까 ‘얘들아’가 괜찮은데? (웃음)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이제 제 또래에게도, 저보다 어린 세대에게도, 어린 아이들에게도 말할 수 있다는 게.

말이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가,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혼자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결국 이 노래로 말하려고 하는 건 ‘전쟁하지 마라’, ‘사람 죽이지 마라’,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이런 말이겠죠. ‘우리가 하는 선택이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근데 그걸 ‘얘들아~’ 이렇게 부르면, 사람들은 어린이들한테 하는 노래인가?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그간 어떻게든 뻔하지 않은 말을 쓰려고 했었다면, 이번에는 뻔한 말을 최대한 알맞게 쓰는 식으로 노력 했어요. 부디 이 말들이 오래 살아남아 민요의 근처라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최고은: 맞아요. 노래가, 미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작업을 이어온 지 10년이 되었고, 또 마흔이 되면서 저 역시 작업의 공적인 역할에 대해 스스로 많이 질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추상 언어를 사용하지만, 제 작업은 지극히 구상적으로, 현실에 두 발을 딛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가령, 제가 재료로 선택하는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보면 주로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물건이에요. 대부분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되기도 하고요. 또 저는 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곳이라기보다는 산업 현장에 가까운 공장들에 작업 공정을 맡기는데요, 그런 공장들은 대체로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계층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물론 시위 현장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삶의 조건을 이루는 요소들이 작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깊숙이 스며 있으니까요.

솔직히 초기에는 작업의 그런 성격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것들이 제 작업에 있어 중요한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파이프를 반으로 가르는 일은 기성품을 부수는 일이고, 그것이 기성품이 만들어지는 공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사회적 관성을 거스르는 일이죠.

그러던 중 최빛나 감독님을 만났어요. (웃음) 감독님의 이번 한국관 전시 제안은 제 작업의 템포에서 보면 굉장히 급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프로젝트 초기에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한 질문을 드렸는데, 물론 해외에서 오래 활동하셨으니 이전에도 역사 의식이나 국가 개념에 고민이 깊으셨겠지만, 동시에 감독님 역시 40대에 들어 그런 문제를 더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과정에서, 역사 의식과 관련한 제 입장을 보여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아, 그래. 그럼 되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뭐랄까. 적절한 시기에 주어진 삶의 숙제 같기도 했고요.

이랑: 웃긴 거 생각났어요. 제비가 집을 엄청 열심히 지은 거예요. 자기 가족을 포근하게 해주려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정말 열심히 집을 지었어요. 그랬는데 다 지어놓고 나니까 집에 꿘들만 들어와 몸을 숨기는 거예요.

최고은: 꿘?

이랑: 운동권이요.

최고은: 아, 꿘~! (웃음)

이랑: 온갖 독립운동가 같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총을 맞고 들어와서, 제비 집에 꾸역꾸역 몸을 비비면서 들어가는 걸 본 제비의 느낌. 아, 내 집이 이렇게 쓰이게 되는구나! 하는.

최고은: 그러게요, 저도 궁금해요. (웃음)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것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는 일은 굉장히 다를 거라서.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계속해서 시도하고 탐구해 온 부분이기도 해요.
조각이 힘을 사용하는 방식을 많이 고민하는데, 반응하는 힘이나 너그러움처럼 작업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층위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노래, 특히 민요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 왔잖아요. 같이 부를 수 있고, 그 자체로 위안이 되기도 하고요.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자연스러운 쓰임 같은. 그런데 어떻게 보면 미술 언어는 형식적으로 굉장히 모호하고 느리다고 보거든요. 미술이 시장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사회 운동으로서 미술을 한다고 하면 적합한가?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물론 작업의 목적이 다른 데에 있을 수 있지만 때론 의도와는 다르게 작업이나 작가가 너무 커다란 언어에 매몰되기도 하니까요.

이랑: 맞아, 어렵다. 미술 어렵다, 미술 어렵네. 골치 아프네요! 작가님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생각을 정립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되게 흔들릴 것 같아요.

최고은: 근데 저는 아까 말씀 들으면서, ‘아, 저건 선택이다’ 이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적어도 ‘여기서는 내가 노래를 아주 고퀄로 잘 부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라는 생각을 하신 지점에 있어서요.

이랑: 네, 나타나는 게 중요하다.

최고은: 네 , 이번 한국관 전시에 가늘고 섬세한 서사들이, 물론 작업마다 작동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각자의 존재감으로 나타날 그 장면이 기대돼요. 아까 노래 가사 중에,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는 구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랑: 아, 그 구절. 그 부분은 제가 2주전 쯤 오키나와에 역사 리서치 투어를 가서 완성했어요. 아카펠라로 합창하는 부분은 이미 써놓은 상태였는데, 마지막 가사를 못 쓰고 있었거든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구절은 오키나와에서 역사 공부를 한 뒤에 쓰게 됐어요.

많은 한국인들에게 오키나와는 아름다운 열대 휴양지로 알려져 있잖아요.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니 너무나 끔찍한 학살과 죽음의 땅이더라고요. 식민 역사가 한국과 닮아 있기도 하고요.

그중 많은 주민들이 집단 자결을 했던 동굴 이야기가 가장 힘들게 다가왔어요. 오키나와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고, 그것을 다룬 작품들도 많이 있거든요.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 국가였다가 ‘오키나와현’으로 일본에 강제 편입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과 미국 사이 가장 큰 격전지가 되어,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했어요.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에 이어 일본 측 전세가 기울자, 주민들에게 미군은 악마라는 식으로 묘사했다고 해요. 미군에게 붙잡히면 죽느니만 못한 취급을 받을 테니 되니 차라리 자결하라고요. 그 말에 1000명 넘는 주민들이 목숨을 잃게 됐어요. 집단 자결이라는 방식으로요. 주민들이 생포되었을 때 군의 위치나 정보를 발설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거죠.

그렇게 아빠가 아내와 자식들을 자기 손으로 죽인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제대로 된 무기나 도구 없이… 조그만 면도칼 같은 걸로 서로를, 가장 아끼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거예요. 가족끼리, 친구끼리,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일본군이 나눠 준 수류탄을 터뜨려 한 자리에서 죽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데 수류탄이 제대로 터지지 않거나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어요. 오키나와 평화기념관 (Okinawa Prefectural Peace Memorial Museum)에 생존자 증언록을 읽는 공간이 있는데요, 한 생존자가 동굴 안에 숨어 사람들이 하나 둘 자결하는 과정을 지켜봤다는 증언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사람이 말하길, 그 누구도 천황을 부르거나 나라 이름을 외치면서 죽은 사람은 없었다. 모두 ‘엄마’를 부르면서 죽었다는 거예요. 엄마, 혹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렇게 죽었다.

그 문장을 보고, 우리는 나라를 위해 살고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어요. 우리는 그저 한 개인으로 태어나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위해, 그리고 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 사는 거지, 국가를 위해 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여기저기 존재하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결론은 ‘지금 사람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다’라고 쉽게 재단할 수는 없지만 고통 속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할 수는 있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가사를 그렇게 쓰게 됐어요.

제가 보기에는 작가님 작업도 되게 신기한 방식으로, 이미지와 개념이 어떤 회로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지며 결과를 만들어 내잖아요. 저는 그게 말과 소리로 펼쳐지는 쪽이네요.

최고은: 아, 그러게요. 저도 작업이 자꾸 밖으로 나가는 것 (펼쳐지는 것) 같아요.

이랑: 해외로?

최고은: 아니요, 아니요. 야외로, 야외로.

이랑: 아아. (웃음)

최고은: 이랑 님의 작업이 말과 소리라면, 저는 공간으로 펼쳐지는 거죠. 그 공간의 바깥으로요. 가장자리에 있던 것들을 공간의 중앙으로 가져다 놓으며 작업을 시작했었는데, 이내 건물의 위(옥상)로, 아니면 아예 야외로, 자꾸자꾸 밖으로 내놓게 되더라고요. 그런 방향성이 어떤 점에서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사실 조각이라는 게, 그 시작이 무덤의 묘비이고 자연이었잖아요.

이랑: 조각이라는 매체가요?

최고은: 네, 조각이 원래 그곳에 있었으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요가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불리며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는 이야기처럼요.

이랑: 묘비. 기념비.

최고은: 나타나기.

이랑: 그러네요. (웃음)

  • 이랑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랑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주변부와 균열의 지점을 노래와 언어로 드러내며, 제도와 권력 바깥에서 형성되는 감정과 목소리에 주목해 온 인물이다. 그의 작업은 대중음악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노동, 젠더, 불평등, 연대와 같은 사회적 현실을 개인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끈질기게 호출해 왔다. 최근 이랑은 아시아 전역에 걸쳐 활발히 활동하며 일본, 대만, 홍콩의 독립 음악 신 및 대안적 문화 공간과 공명해 왔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불안정성, 돌봄, 공동의 삶을 둘러싼 보다 넓은 지역적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 최고은

    최고은은 가정용 인프라에 사용되는 하드 메탈을 주요 매체로 삼아, 실내 공간은 물론 건물의 옥상과 발코니 등 외부 환경까지 조각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며 현장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맥락 속에 포섭하는 장소 특정적 조각을 통해 공간의 구조와 사용 방식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2024년 제2회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2024년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참여, 2022년 아마도예술공간 개인전 《코너링》, 2021년 P21 개인전 《비비드 컷》 등이 있다.

연락처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관람자 정보
전시 기간: 2026년 5월 9일 – 11월 22일
관람 시간: 10:00 – 18:00